내러티브로 진화하는 게임산업의 미래
컨퍼런스의 핵심은 큐레이션이다.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그 한 줄의 선택이 행사의 깊이와 방향을 결정한다. 올해 지스타의 컨퍼런스, G-CON 2025가 선택한 단어는 ‘내러티브(Narrative)’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단순한 테마가 아니라 선언에 가깝다. 게임은 이제 기술의 산업을 넘어, 이야기를 다루는 예술의 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오는 11월 13일부터 14일까지 이틀간 열릴 지스타의 G-CON은 ‘내러티브의 시대’를 주제로, 게임/영화/만화/음악/철학 등 각기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이 한 무대에 선다. 첫 세션의 연사만 보아도 이 흐름이 명확하다. 액션게임의 전설 카미야 히데키와 ‘니어 오토마타’의 창작자 요코 타로, 두 사람의 대담은 게임 디자인의 본질을 ‘플레이를 통한 인간 탐구’로 확장할 것이다. 기술적 완성보다 철학적 메시지, 시스템보다 스토리. 지스타가 제시하는 방향의 출발점이 바로 거기다.
이후로 이어지는 발표들의 제목을 보면 올해 지스타의 큐레이션이 얼마나 세심한지 드러난다. ‘게임과 영화, 음악으로 구축하는 내러티브의 힘’, ‘블랙코미디로 시대를 이야기하다’, ‘감정을 설계하다 - 현대 게임의 창작 철학’, ‘만화와 웹툰: 경계를 넘어선 스토리텔링’. 각기 다른 매체의 언어가 한데 모여, “이야기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올해 G-CON의 무대는 게임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게임을 다시 이해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둘째 날로 넘어가면 논의는 더 깊어진다. ‘플레이어의 선택과 내러티브의 확장’에서는 서사가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경험 속에서 실시간으로 구성된다는 절차적 내러티브 개념이 등장한다. 이어지는 ‘글로벌 IP 시대에서 프로듀서의 역할’, ‘VFX 스페셜리스트에서 스토리텔러로’, ‘문학적 실험과 RPG의 철학’ 같은 세션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내러티브의 구조적 진화를 탐구한다. 이야기의 기술, 예술, 철학이 교차하는 장이 되는 셈이다.
이야기의 전환점은 컨퍼런스 무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전시관 안에서도 그 변화의 조짐은 명확하다. 넷마블은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 ‘프로젝트 이블베인’, ‘나 혼자만 레벨업: 카르마’, 그리고 신작 ‘솔: 인챈트’까지 대규모 신작 라인업을 선보이며, 이야기 중심의 IP 확장을 예고했다. 크래프톤은 글로벌 화제작 ‘팰월드 모바일’을 공개하며 테마파크형 체험 부스로 관람객 몰입을 유도한다. 게임 속 생명체 ‘팰(Pal)’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부스는 이미 전시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웹젠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전략 디펜스 신작 ‘게이트 오브 게이츠’를, 위메이드커넥트는 서브컬처풍 RPG ‘노아(N.O.A.H)’를 공개한다.
해외 게임사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세가·아틀라스는 ‘메타포: 리판타지오’와 ‘페르소나3 리로드’를,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는 ‘에이스 컴뱃’ 30주년 기념 전시를 마련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12년 만에 지스타에 복귀해 ‘오버워치 2’를 중심으로 현장 시연과 ‘지스타컵’ 결승전을 연다. 또한 ‘킹덤 컴: 딜리버런스 2’를 공개하는 워호스 스튜디오, 인디 게임의 다양성을 담은 ‘인디 쇼케이스 2.0’ 등, 전시장은 그야말로 서사적 상상력의 축제가 될 것이다.
올해 지스타는 그래서 단순한 게임 전시회가 아니다.
한 해의 기술력과 신작을 뽐내던 무대에서, 이제는 이야기의 방향성을 논의하고, 그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는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기술이 무르익으면 결국 인간은 다시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가장 생생한 실험장은 지금, 게임의 세계다.
2025년의 지스타는 아마 이렇게 기록될 것이다. “플레이의 시대가 지나고, 내러티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감문전 기자 kmj@kmjourn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