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부터 편집까지
하나의 철학으로 완성하는 워크플로우
많은 사람이 카메라 하면 소니나 캐논을 떠올리지만, 영화 제작 현장 뒤에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회사가 있다. 바로 블랙매직 디자인(Blackmagic Design).
이 회사는 고가의 전문 장비가 필수였던 영화 제작의 진입 장벽을 허물고, 카메라부터 편집까지 모든 과정을 하나의 철학으로 통합하며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소니-캐논'과 다른 워크플로우 철학
블랙매직의 가장 큰 차별점은 기존 강자와 완전히 다른 워크플로우를 가졌다는 점이다. 기존 회사들은 카메라, 렌즈, 액세서리, 그리고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자사 생태계 안에서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폐쇄적 수익 모델'을 추구한다. 이는 마치 고급 자동차를 구매한 뒤, 부품 하나하나까지 모두 제조사에서만 비싸게 사야 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블랙매직은 정반대의 전략을 택했다. 자사의 핵심 소프트웨어인 다빈치 리졸브(DaVinci Resolve)의 기본 버전을 무료로 제공해 누구나 전문가급 편집과 색 보정을 경험하게 했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은 자연스럽게 블랙매직의 생태계에 진입하고, 이 소프트웨어에 최적화된 카메라를 구매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는 카메라를 '생태계의 입구'로 삼는 기존 회사들과 달리, 소프트웨어를 통해 사용자층을 확보하는 영리한 방식이었다.
'다빈치 리졸브'가 이끄는 올인원 생태계
블랙매직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소프트웨어다. 다빈치 리졸브는 과거 할리우드 영화의 '최고급 색 보정 솔루션'으로 명성을 쌓았다. 그러나 이제는 편집, 시각 효과(VFX), 모션 그래픽, 오디오 후반 작업까지 모두 가능한 올인원 솔루션으로 진화했다. 모든 작업을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과거에는 편집, 색 보정, 음향 작업 등 각각의 단계마다 다른 소프트웨어로 파일을 옮기고 변환하는 과정은 마치 위태로운 외발타기와 같았다. 다빈치 리졸브는 이 모든 과정을 ''로 통합해 작업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이는 제작 시간을 단축하고, 파일 호환성 문제도 해결했다.
과거에는 편집, 색 보정, 음향 작업 등 각 단계마다 다른 길을 여러 번 갈아타는 '환승 지옥'과 같았다. 다빈치 리졸브는 이 모든 여정을 '끊김 없는 고속도로'로 연결해 작업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저렴한 카메라, 전문가의 무기가 되다
단순 가격이 저렴한 것은 장점이 아니다. 블랙매직의 포켓 시네마 라인업은 블랙매직 RAW라는 포맷으로 촬영한다. 이 포맷은 소니와 같은 타 제조사가 라이센스를 구매할 정도로 시네마 레벨의 결과물이며, 유연한 색 보정이 가능해 전문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블랙매직의 카메라는 폭발이나 충돌 장면 등 파손될 위험이 있는 상황을 촬영할 때 사용하는 '크래시 캠(Crash Cam)'으로도 활용된다. 이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고품질 영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할리우드 영화 제작 현장에서도 블랙매직의 카메라는 메인 시네마 카메라의 'B-캠'로 활용되며 그 성능을 입증하고 있다.
촬영 단계부터 후반 작업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의 철학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블랙매직의 워크플로우는, 콘텐츠 제작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선종호 칼럼니스트 pigbot98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