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표준화, 실효성 논란

국내 최대 전자기업 삼성전자가 빠진 ‘K-온디바이스 AI’ 국가 사업이 반쪽짜리 협력 생태계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LG전자, 현대차, 두산 등 주요 대기업과 팹리스 반도체 업체들이 참여하며 야심차게 출범한 이번 사업은, 총 1조 원 규모의 투자가 예고된 한국형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개발 프로젝트다. 그러나 가장 영향력 있는 플레이어인 삼성전자가 빠지면서 산업 전반의 파급력과 상용화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연합뉴스)

온디바이스 AI, 차세대 AI 시장의 핵심 기술

온디바이스 AI는 클라우드 연결 없이 기기 자체에서 AI 연산을 처리하는 기술로, 개인정보 보호와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물인터넷(IoT)부터 차량, 가전, 스마트폰까지 다양한 디바이스에 적용될 수 있어 ‘포스트 데이터센터 시대’를 열 핵심 기술로 꼽힌다.

K-온디바이스 AI 사업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칩셋과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고, 국산 공급망 생태계와 표준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부는 팹리스-세트 기업-연구기관 간 협업을 통해 AI 연산 효율을 극대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의 부재…민간 협력 생태계에 ‘구멍’

하지만 정작 국내 시장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참여를 거부하면서 표준화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은 “이미 자체적으로 온디바이스 AI를 개발하고 있고, 정부 과제의 보고 체계가 부담”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삼성 내부 사업부 간 ‘기준 통일’ 부재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모바일(MX)사업부는 독자 AI 전략을, 가전(DA)사업부는 기기 간 연결 중심의 AI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부서 간 접근 방식이 달라 외부 표준에 쉽게 편입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삼성 빠지면 상용화 어려워”…업계 우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업이 기술적으로 성공하더라도, 시장 확산이 제한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내 가전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한 삼성전자가 참여하지 않으면, 사실상 완전한 상용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 개발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표준의 시장 적용인데, 삼성 없는 표준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향후 칩 설계 이후 파운드리(위탁생산) 단계에서도 걸림돌이 예상된다. 정부는 국산 파운드리 활용을 권장하지만, 기술력과 생산 안정성을 고려할 때 대만 TSMC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기술 주권’을 내세운 사업이 정작 외산 의존이라는 역설에 빠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 주도 기술표준, 민간과의 정렬이 관건”

결국 K-온디바이스 AI 사업의 성패는 ‘삼성 없는 연합’이 산업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표준화의 가장 큰 목적은 기업 간 호환성과 생태계 확산이지만, 국내 1위 기업의 부재는 협력체계의 신뢰도와 설득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기술 주권 전략이 시장 기반 민간 기업과 어떻게 정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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