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파 읽는 AI 시대, 기술은 왔고 제도는 없다
뇌파로 감정 읽는 기술, 어느새 우리 곁에
몇 년 전만 해도 뇌파 분석은 의료진이 병원에서 EEG 장비를 통해 뇌전증이나 수면장애를 진단할 때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어폰을 쓰거나 VR 헤드셋을 끼는 것만으로도 사용자의 뇌파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집중도나 스트레스 수준을 분석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중국 상하이교통대 연구진은 뇌파, 표정, 심박수를 결합해 감정 상태를 분류하는 AI 모델로 90% 이상의 정확도를 보였고, 이 연구 결과는 지금도 전 세계 신경과학 기반 AI의 벤치마크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의 AI 연구기관들도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감정 인식 기술을 학습 중이다.
집중도 측정부터 피로 경보까지… 이미 시장은 움직이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Neurable은 유명 오디오 브랜드와 손잡고 EEG 센서를 탑재한 헤드폰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사용자의 집중 상태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앱으로 피드백을 제공한다. VR 산업에서는 OpenBCI의 Galea처럼 EEG, 심박, 시선추적까지 통합한 멀티센서 플랫폼이 B2B 시장에서 시범 배포 중이다.
심지어 호주의 광산업체에서는 중장비 운전자가 졸릴 때 EEG 기반으로 경고 알람을 울려주는 피로 모니터링 시스템도 상용화됐다.
한국 기업 중에는 Looxid Labs가 두각을 나타낸다. 이들은 VR 기기와 EEG, 시선 추적 기술을 결합한 감정 분석 솔루션을 국내외 의료·보험·교육 산업에 공급하고 있다. 이미 국내 보험사와의 협업을 통해 고위험군 선별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AI는 마음을 읽지 않는다… 그러나 “패턴은 읽는다”
AI가 실제로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뇌파에서 추출한 특정 패턴이 특정 감정 상태와 통계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마음을 읽는 AI’가 아니라, ‘감정을 추정하는 AI’라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감정 데이터가 행동 데이터와 결합되었을 때다. 집중도 분석은 클릭률로, 스트레스 지수는 광고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사용자 몰입도나 의사결정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술이 행동을 예측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셈이다.
Meta도 참가… 손목 밴드로 ‘생각만 해도 입력된다’ 시대 열린다
Meta(구 Facebook)는 EMG(근전도) 기반 비침습 신경 입력 손목 밴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장치는 손가락으로 보내는 미세한 전기 신호를 감지해 움직임 없이도 제스처 명령을 실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키보드와 마우스를 대체할 차세대 인터페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기술 시연과 논문에 따르면 커서 이동, 앱 실행, 공중 글쓰기 등 다양한 디지털 제스처를 90% 이상의 정확도로 인식할 수 있으며, 실제 손을 움직이지 않고도 생각만으로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이 핵심 차별점이다. Meta는 이를 두고 "제스처는 근육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이 손목 밴드는 미국 FCC 인증도 획득하면서 제품 출시가 임박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Meta의 발표에 따르면 해당 기술은 향후 AR 글래스, 혼합현실 기기와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고 있다.
유럽은 규제 강화, 한국은 논의도 미진
이처럼 기술은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지만, 제도는 여전히 초기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발효한 AI 법에서 감정 추론 시스템을 고위험 AI로 분류하며, 학교·직장에서는 의료 또는 안전 목적 외엔 사용을 금지했다. 미국도 캘리포니아·콜로라도주가 뇌파를 개인정보로 분류하고, 수집·삭제 권한을 사용자에게 보장하는 주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무단으로 추정하거나 차별·감시에 악용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반면 한국은 개인정보 보호법이나 AI 윤리 가이드라인 모두 뇌파 데이터를 명시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신경 데이터의 민감도나 인지자유권 같은 개념은 아직 논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뇌파 AI, 어디까지 열고 어디까지 막을 것인가
지금의 논의는 단순히 기술 문제가 아니다.
사용자의 뉴로프라이버시, 인지자유권, 신경권(neurorights)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사회적 의제다.
AI는 뇌파를 통해 집중·피로·스트레스 상태를 추정할 수 있고, 이는 교육, 의료, 교통안전,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정확도, 윤리, 목적, 데이터 주권의 균형이 무너지면 감시 기술로 악용될 우려도 적지 않다.
기술이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그 기술이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제도와 윤리가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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