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에서 케이팝데몬헌터스까지...글로벌 IP 확장의 전략 변화
넷플릭스가 IP(지식재산권) 비즈니스에 대응하는 속도를 점점 높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넷플릭스는 “콘텐츠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에 집중해, 2차 사업에는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오리지널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대형 히트를 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제 넷플릭스는 단순히 ‘영화와 드라마를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글로벌 IP 허브로 확장하려는 전략을 본격적으로 꺼내 들고 있다.
오징어게임이 남긴 교훈
2021년 전 세계를 강타한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에게 기회이자 숙제를 남겼다. 드라마의 상징인 초록색 트레이닝복과 번호가 적힌 유니폼은 순식간에 전 세계 팬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속도였다. 공식 굿즈가 나오기도 전에 중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짝퉁 제품이 쏟아져 나왔고, 소비자는 어쩔 수 없이 비공식 제품을 구매했다. 이 경험은 넷플릭스에게 뼈아픈 교훈이 되었다.
IP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수요가 폭발하는 순간에 맞춰 공식 제품을 내놓지 못하면, 시장은 빠르게 비공식 카피 제품으로 채워진다. 콘텐츠의 화제성이 유지되는 기간은 짧고, 유행은 더욱 빨리 지나간다. 오징어게임의 사례는 넷플릭스가 왜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케이팝 데몬헌터스: 발 빠른 굿즈 전략
최근의 케이팝 데몬헌터스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가 글로벌 팬덤을 확보하자마자 넷플릭스는 즉각적으로 응원봉, 티셔츠, 포스터 등 다양한 굿즈를 선보였다. 이는 전통적으로 케이팝 산업이 활용해 온 팬덤 경제 모델을 적극 차용한 것이다. 팬들이 콘텐츠에 몰입한 순간, 바로 굿즈를 구매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이 전략은 단순히 ‘추가 수익 창출’에 그치지 않는다. 굿즈 자체가 또 다른 마케팅 수단이 된다. 팬이 들고 다니는 응원봉과 티셔츠는 오프라인에서 넷플릭스 드라마를 홍보하는 자발적 광고판 역할을 한다. 온라인에서 공유되는 인증샷 역시 또 다른 파급력을 낳는다. 즉, 넷플릭스는 콘텐츠 → 팬덤 → 굿즈 → 확산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애니메이션, 그 다음은 테마파크?
넷플릭스의 행보는 실사 콘텐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IP의 경우 오히려 확장성이 더 크다.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이 보여준 것처럼, 하나의 인기작은 극장판, 뮤지컬, 게임, 테마파크까지 다채로운 형태로 확장될 수 있다. 넷플릭스가 애니메이션 IP를 활용해 ‘싱어롱 극장 상영’이나 ‘체험형 전시’, 더 나아가 테마파크와 같은 대형 오프라인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다.
애니메이션은 캐릭터 굿즈의 판매 잠재력이 특히 크다. 티셔츠, 피규어, 인형, 문구류 등 소비자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비할 수 있는 제품군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애니메이션 IP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사례가 있는 만큼, 넷플릭스 역시 비슷한 방향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팬덤을 겨냥한 ‘IP 포트폴리오’
넷플릭스의 강점은 특정 지역이 아닌 글로벌 팬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적인 방송사나 영화사와는 차별화된 지점이다. 오징어게임이 아시아와 미국을 동시에 휩쓸었듯,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국경을 넘나드는 화제성을 지닌다. 따라서 넷플릭스는 한 국가에서만 통할 만한 로컬 굿즈 전략이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범용적인 IP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공식 상품의 신뢰성이다. 소비자는 더 이상 단순히 ‘싸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정품’이라는 가치를 구매한다. 넷플릭스는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짝퉁 시장을 견제하고, 팬덤이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콘텐츠 기업에서 IP 기업으로
넷플릭스의 행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콘텐츠 기업에서 IP 기업으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와 영화는 여전히 핵심 자산이지만, 이제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 된다. 굿즈, 공연, 테마파크, 게임, 협업 브랜드 제품 등 IP 비즈니스는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갖는다.
앞으로 넷플릭스가 얼마나 기민하게 시장의 반응을 읽고, 콘텐츠와 상품 출시의 속도를 조율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오징어게임의 아쉬운 기억을 교훈 삼아, 케이팝 데몬헌터스 같은 성공 사례를 축적한다면, 넷플릭스는 단순한 플랫폼을 넘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생태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비즈인사이트 칼럼니스트 yoi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