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AI 허브 국가론’에 세계 자본이 반응했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뉴욕의 한 호텔에서 래리 핑크 세계경제포럼 의장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뉴욕의 한 호텔에서 래리 핑크 세계경제포럼 의장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I 수도’ 구호는 많았지만, 실행은 드물었다

한국은 지난 수년간 ‘AI 강국’을 국가 비전으로 내세워 왔다. 초거대 인공지능 개발, AI 반도체 육성, 데이터 주권 강화 등 다양한 전략이 추진되었지만, 그 성과는 아직 제한적이었다.

정책 선언과 예산 확보만으로는 글로벌 AI 시장에서 실질적인 위상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특히 해외 자본이 참여하는 구체적인 협력 모델이 부재했고, 물리적 인프라와 대규모 투자를 연결할 실질적 고리는 없었다.

‘AI 수도’는 선언은 있었지만 실행 기반이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블랙록과의 협력은 구호를 넘은 실행 전략으로 전환할 계기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첫 방미 일정으로 ‘블랙록 CEO’를 만난 대통령

2025년 9월 22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첫 일정으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을 접견했다.

대통령의 첫 공식 일정을 블랙록 회동으로 시작한 것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를 넘어서는 분명한 메시지였다. 한국이 AI 기술 자체를 넘어서, 글로벌 인프라 중심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투자자에게 직접 전달한 것이다.

이날 회동 직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블랙록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협약에는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 구축 ▲재생에너지 기반 인프라 협력 ▲수조 원 규모의 시범 투자 ▲국내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공동 펀드 조성 계획이 담겼다. 이는 상징적 선언이 아닌 실행 중심의 협력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뉴욕의 한 호텔에서 래리 핑크 세계경제포럼 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뉴욕의 한 호텔에서 래리 핑크 세계경제포럼 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블랙록은 왜 지금, 왜 한국을 선택했는가

블랙록은 12조 5천억 달러, 한화 약 1경 7천조 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다. 신중한 투자 성향으로 알려진 블랙록이 한국 AI 산업에 주목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배경이 있다.

먼저, 정치·경제적 안정성이다. 래리 핑크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며, 안정적인 정책 환경과 거버넌스를 높게 평가했다.

또한 한국은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망, 재생에너지 등 핵심 인프라를 정부 주도로 통합 구축할 수 있는 드문 국가다. 여기에 더해 아시아 시장과의 지리적 연결성까지 갖추고 있어, 기술·시장·정책이 결합된 전략적 허브로서 블랙록의 시선이 향한 것이다.

하이퍼스케일 AI 인프라와 재생에너지, 정책의 교차점

이번 협약의 핵심은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를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한국에 설립한다는 점이다. 초거대 AI 모델을 학습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존 클라우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전력과 냉각 인프라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에너지 전환 정책과 AI 인프라 전략을 결합해, 국가 차원의 친환경 AI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시하는 블랙록의 투자 기준과도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이러한 재생에너지 연계형 AI 인프라 전략은, 향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물리적 거점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 될 전망이다.

수십조 펀드 예고, 국내 기업도 참여 가능한 구조

이번 협력은 단순한 외자 유치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향후 구성될 AI 투자 펀드에 국내 기업의 참여도 가능하도록 설계할 계획이다.

대통령실은 “단기간 내 수조 원 규모의 시범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며, 정부와 블랙록 간 TF가 구성돼 구체적 실행 계획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펀드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하게 된다면,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글로벌 자본 생태계와 직접 연결되는 새로운 성장 경로를 확보하게 된다. 특히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인프라, 클라우드, 전력 운영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동시다발적인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AI 수도’ 실현의 관건은 실천력과 정책 설계

이재명 대통령의 ‘AI 수도’ 구상은 그 자체로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블랙록과의 협력처럼 자본, 정책, 인프라, 기술이 연결된 구체적 실행 계획이 마련된 것은 이례적이다.

실현을 위해서는 ▲전력 요금 구조 개편 ▲데이터센터 부지 공급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 ▲기업 유인을 위한 세제 및 규제 정비 등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정책적 비전이 구호로 그치지 않으려면 민관 협력과 실행 설계가 정밀하게 맞물려야 한다. 블랙록과의 협력은 그 첫 실마리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 AI 전쟁의 ‘지도 위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까

AI는 더 이상 소프트웨어나 알고리즘의 경쟁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는 에너지, 전력, 자본, 정책이 총동원되는 전략 산업의 전장이다.

이번 블랙록과의 협약은 한국이 단순한 기술 수요국을 넘어, AI 생태계를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는 공급자 국가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기회를 실행 가능한 정책과 인프라로 전환할 수 있다면, 한국은 AI 글로벌 패권 경쟁의 지형도 위에 ‘플레이어’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2025년 9월의 이 회동은 그 분기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테크풍운아 칼럼니스트  scienceaza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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