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뼈·혈관까지” 사람 해부학 그대로… 인공근육 1,000개 탑재
■ “근육 달린 로봇”의 등장은 어떻게 시작됐나
폴란드 스타트업 클론 로보틱스(Clone Robotics)의 이름이 글로벌 테크 씬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21년이었다. 당시 이들은 단 3g짜리 섬유 한 가닥이 1kg을 들어 올리는, ‘마이오파이버(Myofiber)’라는 인공 근육 기술을 발표했다. 기존 전기 모터 기반 로봇이 ‘딱딱한 관절 움직임’에 그쳤다면, 마이오파이버는 실제 근육처럼 수축·이완하며 동작하는 유체 기반 근육이었다.
이후 클론은 인체 근골격을 충실히 재현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뼈 206개·근육 1,000개·200개 이상의 자유도(DoF)를 구현한 휴머노이드 ‘프로토클론 V1’을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클론은 “로봇을 기계가 아닌 살아 있는 존재처럼 움직이게 하겠다”는 뚜렷한 방향성을 내세웠다.
■ 프로토클론 V1, 인체 해부학을 그대로 옮기다
프로토클론 V1은 ‘바이오미메틱(생체 모방)’ 로봇의 집대성이다. 인대와 힘줄까지 복제된 뼈 구조 위에 마이오파이버 1,000개를 배치해 실제 인간의 근육 배치와 동일하게 동작한다.
제어 두뇌는 엔비디아 젯슨 칩이다. 여기에 카메라 4개, 압력 센서 320개, 관성 센서 70개에서 들어오는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며 근육을 정밀하게 구동한다. 로봇의 ‘혈관계’ 역할은 500W 전기 유압 펌프가 맡아 물을 공급·순환시키고, 열은 땀처럼 배출되는 방식으로 식힌다.
덕분에 프로토클론은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을 구현할 수 있고, 시연 영상에서도 기존 모터형 로봇과 달리 근육이 미세하게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 모터 중심 패러다임을 흔든 도전자
오늘날 로봇업계의 주류는 전기 모터·감속기 기반이다. 테슬라 ‘옵티머스’, 피규어AI의 ‘Figure 01’, 앱트로닉의 ‘아폴로’까지 모두 같은 계열이다. 부품 생태계가 안정적이고, 산업 적용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론은 정반대 길을 간다. 인공 근육 + 합성 뼈 + 유체 혈관이라는 ‘사람 그대로’의 구조를 로봇에 옮겨놓았다. 이는 일본 도쿄대 JSK랩이 2016년 ‘켄고로(Kengoro)’ 로봇에서 보여준 ‘땀을 흘리는 냉각’ 실험을 상업화 단계로 끌어올린 진화형 시도라 할 수 있다.
결국 클론은 “산업용 모터 로봇”이 아닌, “사람 같은 조력자”라는 완전히 다른 시장을 겨냥하는 셈이다.
■ 내구성·누수·자립 보행 실현 여부가 관건
물론 한계도 뚜렷하다. 프로토클론 V1의 데모 영상은 아직 외부 지지 구조물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완전한 자립 보행이나 장시간 작업은 검증되지 않았다. 또한 유체 기반 시스템 특성상 누수, 밸브·실(seal) 파손, 장기 내구성 같은 기술적 과제가 상존한다.
상용화 관점에서는 정비 주기·안전성·부품 공급망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넘어야 한다. 이는 ‘로봇이 인간과 공존하는 생활 영역’에 들어오기 위한 관문이 될 것이다.
■ 클론 알파, 알파 에디션 279대 예약 돌입
클론은 프로토클론 V1을 바탕으로 전신 휴머노이드 ‘클론 알파(Clone Alpha)’를 개발 중이다. 현재는 279대 한정 알파 에디션 예약을 받고 있으며, 연구소·스타트업·대학 등 초기 수요처를 대상으로 공급한다.
정식 양산형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클론은 촉각 피부·표정 모사까지 더해 인간 조력형 로봇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내세운다. 이는 산업용을 넘어 가정·서비스 영역까지 확장 가능한 또 다른 노선을 열 수 있다.
■ ‘로봇의 왕국’에 다시 돌아온 근육파
전기 모터 일색의 로봇 산업에서 클론 로보틱스의 행보는 과학자들이 꿈꾸던 ‘살아 있는 로봇’ 비전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상용화 허들은 높지만, 근육과 뼈, 혈관과 땀까지 재현한 로봇은 기술사적으로도 드문 실험이자 도전이다.
앞으로 클론이 내구성·안전성 문제를 해결한다면, 로봇은 산업 파트너를 넘어 ‘정말 사람같은 로봇 동반자’라는 새로운 위치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테크인싸 칼럼니스트 tlswnqo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