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은 위기 속에서 진짜 드러난다
이경규의 약물복용 후 운전에 대해 법원이 어제 200만원 약식명령을 내리면 사건이 일단락됐다.
그는 현재 프로그램의 인기와 별개로 이 사건의 여파와 무관하게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대한민국 코미디계의 대부 이경규에게 찾아온 가장 큰 위기였던 이 사건은 과연 어떻게 전개 됐기에, 그에에 큰 타격없이 이렇게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일까.
위기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위기의 크기를 결정하는 건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다. 2025년 6월, 이경규의 ‘약물 운전 논란’은 그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실전 사례였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방송인의 일탈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나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교과서적 매뉴얼이었다. 그의 일련의 대응은 위기를 ‘이미지의 파괴’가 아니라 ‘신뢰의 검증’으로 바꿔냈다.
1단계 사건 발생과 즉각적 인정 (6월 8~9일)
사건은 MBN의 단독보도로 시작됐다. “이경규, 약물운전 혐의로 경찰 조사” 자극적 문장이 헤드라인으로 퍼지며 여론은 순식간에 냉각됐다. 이때 이경규는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즉시 “사실을 인정하고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첫 한마디는 간단했지만 결정적이었다. 부정하지 않고 인정함으로써, 논란의 불길은 처음부터 감정적 폭발로 번지지 않았다. 위기관리의 기본은 ‘싸우지 않고 여론을 멈추는 것’이다. 그는 정확히 그렇게 했다.
2단계 외부의 옹호와 프레임 전환 (6월 10~12일)
며칠 뒤, 의료계와 언론계가 움직였다. “약물운전의 법적 기준이 없다”, “공황장애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경계해야 한다.” 중앙일보, 한국경제 등 주요 언론이 이런 논조를 내며 프레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치료 목적의 약 복용은 불법이 아니다”라며 제도적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이 시기 이경규는 침묵했다. 그의 대신 제3자의 목소리가 말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은 ‘복잡한 제도의 피해자’로 이동했다. 위기는 말이 아니라 타인의 신뢰로 회복된다는 원리를 증명한 순간이었다.
3단계 경찰 수사와 의혹의 교차 (6월 16~25일)
국과수 감정 의뢰, 부주의 시인 등 수사 보도가 이어지며 다시 긴장감이 높아졌다. MBC, 채널A 등은 “의도된 행위가 아니다”라며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일부 매체는 여전히 ‘도덕성 논란’을 자극했다. 이 시점은 위기 진정과 재확산이 교차하는 구간이었다. 여론의 기류가 안정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언론전을 벌이지 않았다.
4단계 CCTV 공개, 그리고 두 번째 사과 (6월 26~28일)
또 다시 MBN이 단독으로 운전 당시 CCTV를 공개했다. “차도 불법 좌회전까지…” ‘저 상태에서 운전을 한다고?’라는 여론의 비판이 터져 나왔다. 앞서 쌓였던 공감의 무드는 무너지고, 다시 ‘실망’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경규는 즉각 두 번째 사과문을 냈다. “영상이 불편하셨을 겁니다. 변명의 여지 없습니다.” 짧았지만 강력했다. 시각적 증거 앞에서 변명 대신 감정에 호소했고, 이는 여론의 온도를 다시 낮췄다. 진정성은 언어의 길이가 아니라 타이밍의 문제임을 보여준 대응이었다.
5단계 경찰 결론과 감정의 회복 (6월 30~7월 초)
경찰은 “고의성 없는 단순 부주의”로 결론을 내렸다. 동시에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이 “약물운전은 음주운전과 동일선상에서 다룰 수 없다”고 밝혔고, 여론은 다시 안정세를 찾았다. 이경규는 유튜브에서 다시 한 번 직접 고개를 숙였다. “불편하셨을 시청자분들께 죄송하다. 제 잘못이 맞다.” 그는 보도자료가 아닌 자기 언어로 사과했다. 그 순간, 사건은 뉴스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로 전환됐다.
6단계 진심의 확장과 회복 (7월 중순 이후)
이경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약물 논란이 나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고 고백했다. 박명수 등 동료 코미디언들도 “나도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 있다”고 말하며 그를 지지했다. 언론도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논조로 전환됐다. 그의 위기는 사회적 공감의 계기가 되었다.
7단계 법적 종결과 이미지 복원 (8월~최근)
검찰은 이경규를 약식기소했고, 법원은 200만 원 벌금형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는 방송 복귀 무대에서 “세상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짧은 고백 한마디는 ‘위기를 이긴 사람’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인간적인 사람’으로서의 신뢰를 복원했다. 9월 이후, 언론은 “이경규, 다시 웃음을 주다”, “공황장애 환자에 대한 편견 깨야”로 논조를 바꿨다.
“Good guy in a bad situation”의 본질
이경규의 사례는 단순히 ‘사과를 잘한 연예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 나쁜 상황에서 신뢰를 잃지 않는 법”을 보여줬다. 그의 위기대응에는 다섯 가지 교훈이 담겨 있다.
첫째, 평소에 잘 살아야 한다. 선행과 신뢰자본은 위기 때 가장 강력한 보험이다.
둘째, 나를 대변해줄 이익집단과 미디어를 확보하라. 산업계,언론계,직장동료의 옹호는 제3차 방어선이 된다.
셋째,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가져라. 유튜브 등 자기 언어의 플랫폼이 진정성을 입증한다.
넷째, 변명보다 빠른 인정이 핵심이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한마디가 모든 논리를 이긴다.
다섯째, 사람이 아닌 ‘상황’의 문제로 프레임을 전환하라.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나쁜 환경의 피해자’로 재구성하라.
결국 PR은 위기를 덮는 기술이 아니다. PR은 평소의 신뢰를 증명하는 윤리적 행위다. 이경규는 ‘좋은 사람’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증명했다. 그의 사례는 한국식 위기관리의 정석으로 남을 것이다.
비즈인사이트 칼럼니스트, yoian@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