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는 이제 무대 위 셀럽이다

APEC 정상회의의 공식 만찬장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은 장면은 따로 있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30일 서울 삼성동 한 치킨집에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 회동 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연합뉴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30일 서울 삼성동 한 치킨집에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 회동 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연합뉴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서울 삼성동 거리를 거닐며 ‘깐부치맥’을 즐기는 순간이었다.
그의 손에는 맥주 한 잔과 치킨, 옆에는 시민들, 그리고 그 장면은 순식간에 전 세계 SNS 피드로 퍼졌다. 글로벌 테크권력 0순위인 CEO가 한국 직장인의 저녁 치맥을, 그것도 삼성의 이재용 회장과 현대자동차의 정의선 회장과 함께 나누다니!  세 사람의 한 끼는 곧 글로벌 뉴스가 되었고, 세계는 ‘AI 황제의 회동’이 아닌 ‘친근한 CEO들의 저녁식사’를 기억했다.

이제 리더십의 시대는 ‘전략’보다 ‘장면’이 말한다.

CEO는 더 이상 회의실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것이 공개되고, 기록되고, 짧은 영상으로 소비되는 세상에서 리더는 자연스레 ‘퍼블릭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젠슨 황의 소맥(소주+맥주)은 단순한 술 한 잔이 아니라, 새로운 리더십의 상징이었다. 예전의 리더십이 권위와 무게로 설득했다면, 지금의 리더십은 인간성과 친밀감으로 신뢰를 얻는다. 데이터가 사람보다 빠르고, AI가 판단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사람 냄새 나는 리더’의 가치는 더 커진다.

젠슨 황이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기술을 이야기할 때조차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 파트너, 소비자와의 관계를 ‘거래’가 아니라 ‘공감’으로 읽는다. 친화력은 이제 능력이 아닌 자본이다. 특히 이번 APEC 기간 동안 보여준 ‘삼인방의 케미’는 인상적이었다. 삼성과 현대, 그리고 엔비디아 - 서로 다른 영역의 리더들이 한 무대에 올라 팬들 앞에서 총을 쏘는 포즈를 취하며 ‘지포스 팬 이벤트’를 즐기는 장면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곳에는 더 이상 양복 차림의 권위적 총수도, 준비된 연설문도 없었다. 이재용, 정의선, 젠슨 황 세 사람은 함께 웃고, 함께 농담하며, 팬들의 환호 속에서 ‘게임하는 세대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들의 유머와 순발력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었다.

리더들 스스로 브랜드의 ‘콘텐츠’가 되며 심지어 즐기고 있었다. 대중은 그 장면에서 ‘기업’이 아닌 ‘사람’을 봤고, ‘기술’이 아닌 ‘태도’를 느꼈다. 리더십은 무대 뒤에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엘론 머스크의 트윗이 주가를 흔들고, 팀 쿡의 한마디가 ESG 담론을 바꾸듯, 젠슨 황의 인터뷰와 제스처는 곧 엔비디아의 철학으로 번역된다.

대중은 브랜드보다 사람을 신뢰한다.

그리고 그 신뢰는 리더의 언어, 표정, 농담 하나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유머감각은 더 이상 사소한 덕목이 아니다. 진지한 시대일수록 위트가 경쟁력이다. 젠슨 황의 발표는 언제나 유쾌하고, 팬들과의 만남에서도 그는 상황을 가볍게 즐긴다. 그 유머는 꾸며낸 연출이 아니라, 순간을 읽는 감각에서 나온다. 리더가 웃을 줄 모르면 조직은 긴장하고, 리더가 농담할 줄 모르면 브랜드는 경직된다. 유머는 리더십의 온도다.

리더에게 더 중요해진 것은 순발력

미리 준비된 메시지로는 한순간의 상황을 감당할 수 없다. SNS 라이브, 예기치 못한 질문, 갑작스러운 대중의 반응 속에서 CEO는 ‘실시간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젠슨 황은 그런 면에서 천부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질문을 피하지 않고, 상황을 웃음으로 바꾸며, 팬의 요구에 즉흥적으로 반응한다. 이재용과 정의선 회장 역시 젠슨 황과의 자리에서 그 흐름을 완벽히 읽었다. 함께 웃고, 이전 에피소드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으며, 젊은 세대와 한 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버지 세대의 재벌총수’와는 완전히 다른 시대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오늘날 CEO는 단순히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아니다.

CEO는 사회적 메시지를 발신하고, 문화를 해석하며, 팬덤을 이끄는 존재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리더’보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리더’가 되는 것. 그게 바로 셀럽의 기술이다. 젠슨 황, 이재용, 정의선 회장은 그 사실을, 한 잔의 소맥과 한 무대 위의 웃음으로 증명해 보였다.

비즈인사이트 칼럼니스트 yoi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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