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One LG’ 전략의 진짜 의미
메르세데스-벤츠가 한국까지 와서 LG전자·LG디스플레이·LG에너지솔루션·LG이노텍 CEO를 한 자리에 모았다.
단순한 courtesy 미팅이 아니다. 이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판도가 바뀌는 지점에서, LG가 드디어 ‘부품 벤더’를 넘어 ‘통합 시스템 파트너’로 올라섰다는 선언과도 같다. 벤츠가 이번 회동에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LG가 전장사업에서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고, 그 기술적·생태계적 역량을 어디까지 끌어올렸는가를 직접 점검하는 자리였다.
자동차 산업이 내연기관 중심 구조에서 전기차(EV),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으로 전환되면서 완성차의 요구는 단순해졌다.
“부품별 최적”이 아니라 “시스템 단위 최적”이다. 배터리·디스플레이·센서·소프트웨어가 하나의 컴퓨팅 아키텍처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시대,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더 이상 특정 모듈만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차량 전체 경험을 설계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 기업이다. 그리고 LG는 바로 그 위치로 올라서고 있다.
‘One LG’는 이런 흐름 속에서 나온 전략적 구조다.
지금까지 LG의 전장 사업은 계열사별로 두터운 역량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장에서는 각각 따로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줬다. 하지만 벤츠의 글로벌 비전-‘EV 중심의 미래 모빌리티’와 ‘디지털·자동화 기반의 지속가능한 생산 네트워크’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독립된 역량이 아니라, 결합된 역량이다. LG전자(IVI, ADAS), LG디스플레이(P-OLED), LG에너지솔루션(배터리), LG이노텍(카메라·레이더·라이다)이 하나의 아키텍처 언어를 공유하고, 하나의 솔루션 브랜드로 OEM에 접근할 수 있을 때 기술의 파급력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번 ‘One LG’ 회동은 그 결집의 첫 공식 장면이었다.
그럼 이번 만남에서 벤츠는 무엇을 확인했을까?
첫째는 LG의 SDV 설계 능력이다. 자동차의 경쟁력이 하드웨어 비중을 크게 줄이고,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UX 아키텍처로 이동하고 있다. LG전자가 웹OS 기반의 차량용 IVI, 고성능 ADAS 제어기 등 SDV 핵심 시스템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건 의미가 크다.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반 경쟁은 “지속적 업데이트와 서비스형 수익모델(SaaS)”로 연결되기 때문에, 부품 공급을 넘어 “차량 경험을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십”이 가능해진다.
둘째는 고객 경험의 프리미엄화다. 벤츠는 EQS를 비롯한 하이엔드 라인업에서 차량 내부 디스플레이를 브랜드 경험의 중심축으로 삼아 왔다. LG디스플레이의 P-OLED는 이미 벤츠의 하이퍼스크린을 구현하는 핵심 기술이다. 단지 패널이 아니라, ‘자동차 디자인’과 ‘UX’ 자체를 바꿔놓는 솔루션이다. 자동차가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화면 중심 경험으로 이동하는 지금, LG는 벤츠의 프리미엄 UX 전략에 있어서 사실상 대체 불가한 파트너 지위를 얻었다.
셋째는 EV 전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배터리 경쟁력이다. 벤츠는 LG에너지솔루션과 이미 꾸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왔고, 이는 벤츠 EV 모델의 안정성과 성능 신뢰도를 좌우한다. LG는 양산 품질, 공정 안정성, 글로벌 공급망 관리를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파트너다. 더구나 SDV 시대에는 배터리 BMS와 차량 소프트웨어의 결합도 중요해지는데, LG는 이 부분에서도 계열사 역량을 통합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진다.
마지막은 자율주행 센싱 능력이다. LG이노텍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차량용 카메라 모듈을 공급해 왔고, 라이다·레이더 기술로 확장을 검토 중이다. 벤츠의 레벨3, 레벨4 도입 전략에 있어 이 센싱 기술은 필수 요소다. 결국 벤츠는 이번 회동에서 “LG는 EV–SDV–AV를 아우르는 풀 체인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LG는 “Yes”에 가까운 답변을 제시한 셈이다.
이번 회동이 전장사업 전략에서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이것이다.
LG가 경쟁의 단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경쟁은 “부품 품질”과 “공급 안정성”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동차 시장은 “플랫폼 경쟁”으로 넘어왔다. 테슬라는 자체 운영체제(OS)를 통해 OTA를 구현하고, 애플은 차량용 생태계 구축을 꿈꾸며, 중국 OEM들은 디스플레이와 인포테인먼트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LG는 ‘One LG’를 통해 “하드웨어 + 소프트웨어 + UX + 전력 + 센싱”을 묶어 제안할 수 있는, 소수의 글로벌 기업 중 하나로 포지션을 바꾸고 있다.
벤츠의 한국 방문은 이런 전략 전환의 첫 정치적 장면이다.
완성차 OEM은 단순히 제품을 고르지 않는다. “차량의 미래를 함께 설계할 파트너”를 고른다. LG는 그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번 회동을 통해 보여준 셈이다. 앞으로 ‘One LG’가 단순 브랜드 슬로건을 넘어, 실제 글로벌 OEM을 대상으로 한 통합 수주 구조로 확장된다면 한국 전장사업은 한 단계 더 큰 퀀텀 점프를 맞게 될 것이다.
비즈인사이트 칼럼니스트, yoian@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