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1일) 국토교통부가 구글의 ‘1:5000 축척 지도’ 해외 반출 여부를 결정한다. 이번 논의는 단순한 지도 데이터 처리 문제를 넘어, 한국의 데이터 주권과 글로벌 플랫폼 규제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 ‘1:5000 지도’가 고정밀인가… 기술적 정의부터 엇갈린 해석
구글은 현재 서비스 중인 1:25,000 축척 지도보다 다섯 배 정밀한 ‘1:5000 축척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 지도는 실제 거리 50미터를 지도상 1센티미터로 표현할 수 있어, 내비게이션과 자율주행 서비스의 정확도를 높이는 핵심 기술로 꼽힌다.
문제는 이 축척이 ‘고정밀지도’로 분류되는가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는 점이다. 구글코리아는 지난 국정감사에서 “1:5000 지도는 국토지리정보원이 국가기본도로 규정한 수준으로, 이미 공공 데이터의 범주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토부와 다수 전문가들은 “1:5000부터는 군사·보안시설의 위치가 노출될 수 있어, 고정밀지도에 해당한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바로 이 ‘기술적 정의’가 정책적 기준으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 데이터센터 설립이 관건… 구글의 침묵이 불러온 긴장감
국토교통부는 구글의 지도 반출 요청에 대해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군사기지·보안시설 등 국가보안시설은 가림 처리해야 한다.
▲둘째, 좌표 정보의 노출은 금지해야 한다.
▲셋째, 데이터를 저장·관리할 국내 데이터센터를 설립해야 한다.
구글은 앞선 두 조건에 대해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가장 핵심적인 세 번째 조항인 ‘국내 데이터센터 설립’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변을 미루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에 서버가 없으면 법적 통제와 정보보호 조치를 실질적으로 시행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구글이 조세 회피를 위해 국내 물리적 서버 설치를 꺼린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구글코리아의 법인세 추정액은 6762억 원이었으나 실제 납부액은 172억 원에 불과했다.
■ ‘데이터 주권 vs 글로벌 경쟁력’… 정부의 딜레마
정부가 고민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한쪽에는 ‘데이터 주권’이라는 국가적 가치가, 다른 쪽에는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산업적 현실이 있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단순한 지리 정보가 아니라, 자율주행·AR 내비게이션·스마트시티 등 첨단 산업의 기반이 되는 핵심 인프라다. 그러나 그 정밀도가 높을수록 군사·안보 정보 유출 위험 또한 커진다.
정부가 구글의 요청을 조건부로 수용한다면, 글로벌 플랫폼과의 기술 협력 강화라는 효과가 있지만, 반대로 해외 서버로 데이터가 반출될 경우 국내 주권 통제력이 약화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산업정책 전문가는 “이번 결정은 단순히 구글 지도 반출 여부를 넘어, 앞으로 한국이 글로벌 AI·로보틱스 시대에 데이터를 어디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 ICT 산업 구조에도 파급… ‘조세·공정경쟁’ 논란 불붙다
지도 반출 이슈는 세제 논쟁으로도 번지고 있다. 구글이 국내에서 발생시키는 광고 및 앱 매출의 상당 부분이 외국 서버를 통해 처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구글이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하지 않는 한, 실질적인 세금 징수나 공정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일부 경제계에서는 “데이터센터 설치를 강제하는 규제는 글로벌 비즈니스 유연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처럼 정책과 시장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정부의 결정은 ‘한국형 빅테크 규제 모델’의 시금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 이번 결정이 남길 선례, 한국 ICT 생태계의 분기점
이번 국토부 협의체의 결론은 향후 글로벌 기업이 한국 내에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에 직접적인 선례가 될 전망이다.
반출이 전면 허용되면 구글은 자율주행·위치기반 서비스·AI 매핑 기술에서 빠르게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거부되거나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가 조건으로 붙는다면, 국내 기업이 지도 플랫폼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가의 안보 논리와 산업 성장 논리가 정면으로 맞붙은 이번 결정은, 한국이 ‘데이터를 어디에 저장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테크인싸 칼럼니스트 tlswnqo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