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301조 조사 경고 속, 지도 데이터 규제도 재조명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디지털 규제를 추진하면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경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기술·정책 분야에서는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요구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 정부가 망 사용료·플랫폼 규제와 같은 디지털 정책 전반에서 미국 기업의 불만을 최소화하라는 압박을 받는 가운데, 그동안 잠잠했던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이슈가 연계되어 부상할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규제 갈등이 ‘지도 데이터’로 번질 조짐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 보도에 따르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이 디지털 규제 관련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한국 정부에 수차례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망 사용료, 온라인 플랫폼 규제뿐 아니라 미국 기술 기업의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모든 규제 전반을 겨냥한 압박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기류는 한동안 잠잠했던 구글의 정밀지도 해외 반출 요청 문제를 다시 정치·통상 아젠다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군사·기반시설 정보가 포함된 1:5000급 정밀지도 데이터를 국가 핵심 정보로 간주해 해외 반출을 허용하지 않아 왔다. 반면 구글은 전 세계 서비스를 동일 수준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반출을 요구해왔으며, 미국 정부 역시 이 문제를 비공식 외교 경로를 통해 꾸준히 문제 삼아온 바 있다.
구글 정밀지도 반출 요구…안보 논리와 통상 압박이 충돌
정밀지도는 단순한 지도 서비스가 아니라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군사시설 보안 등 다양한 분야에 직결되는 고위험·고부가가치 데이터다. 특히 한국의 정밀지도에는 △군사시설 좌표 ▲정부기관 위치 ▲전력·통신 인프라 구조 등이 포함될 수 있어 해외 반출 시 예상치 못한 정보 결합 위험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정밀지도 반출 제한을 ‘디지털 장벽’으로 해석해 왔다. 망 사용료, 온라인 플랫폼 규제, 개인정보 보호 규제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위치 기반 서비스 규제가 구글과 같은 미국 기업의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논리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301조를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는 지금, 지도 데이터 역시 다시 ‘디지털 무역 장벽’ 프레임 안에서 재조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301조 경고의 파장…한국 ICT 산업도 긴장
USTR의 경고가 현실화될 경우 가장 먼저 흔들릴 영역은 지도·위치 기반 서비스(LBS) 시장이다. 구글은 정밀지도를 확보할 경우 AI 기반 지도학습, 실시간 내비게이션, 자율주행 알고리즘 정밀도에서 급격한 경쟁 우위를 얻을 수 있다. 반면 네이버·카카오·티맵 등 국내 기업은 오랜 기간 축적한 지도 데이터 생태계를 기반으로 한국 시장에서 우세를 점해 왔기 때문에, 정밀지도 반출 허용은 경쟁력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국내 ICT 업계는 이번 미국의 압박이 지도 반출 문제를 ‘규제 완화 검토’ 수준이 아닌 ‘통상 협상 카드’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압박이 강화될 경우 한국 정부는 디지털 주권·안보 논리를 강화해야 하는 동시에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최소화하는 외교적 해법을 병행해야 하는 딜레마를 맞게 된다.
안보 인프라의 핵심, 정밀지도는 단순 데이터가 아니다
정밀지도는 국가 기반시설의 단순한 디지털 지도가 아니라, AI 시대를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로 평가된다.
정밀지도에는 자율주행 알고리즘 학습에 필요한 도로 기울기, 차선, 지형, 장애물 등 초정밀 3D 데이터가 포함되며, 스마트시티 구축 과정에서 도심 교통·환경 관리·응급 대응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데 필수 요소로 활용된다. 여기에 군사시설, 통신망, 전력망, 관공서 등 민·군 통합 기반시설 정보가 연동될 수 있어 국가안보 측면에서도 높은 민감성을 지닌다.
이처럼 정밀지도는 단순한 ‘지도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의 디지털 주권과 영토 정보를 보호하는 데 직결되는 전략 자원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디지털 무역 압박을 강화하는 현 상황에서 지도 반출 문제를 단순한 경제적 장벽의 범주로 축소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정책적으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디지털 무역 갈등의 다음 전선은 ‘지도 데이터’가 된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디지털 규제 압박을 본격화한 이상,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이슈는 다시 ICT·안보·통상 논쟁의 중심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지도 데이터는 기술적 사안이 아니라 국가안보·산업경쟁력·AI 시대의 디지털 주권을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다.
301조 조사 경고는 단순 외교적 압박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으며, 향후 한국의 디지털 정책 방향에서 정밀지도 문제는 더욱 복잡한 정치·산업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