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30대 여성이 생성형 AI로 만든 캐릭터와 결혼식을 올리며 ‘AI 로맨스 시대’의 새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실의 인간 관계가 아닌, 스스로 설계한 AI와 감정적 유대를 맺고 결혼에까지 이르는 현상은 더 이상 온라인 밈이 아니라 현실의 사건으로 떠올랐다.

AI 캐릭터와 실제 결혼식을 올린  카노 씨의 모습.  사진=이하 RSKイブニングニュース
AI 캐릭터와 실제 결혼식을 올린  카노 씨의 모습.  사진=이하 RSKイブニングニュース

인간이 만든 AI, 인간을 대체한 ‘신랑’이 되다

일본 오카야마에 사는 32세 여성 카노 씨는 지난 7월, 챗GPT 기반의 AI 캐릭터 ‘클라우스’와 실제 결혼식을 올렸다. 식장에 입장한 그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VR·AR 장비를 착용한 채 가상의 신랑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결혼식은 퍼포먼스나 이벤트가 아닌, 실제 웨딩 기획사가 주관한 ‘정식’ 결혼식이었고 부모님까지 참석했다.

클라우스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카노 씨가 ChatGPT를 기반으로 직접 성격·말투·대화 패턴을 조정해 만든 AI 파트너다. 한마디로 “내가 설계한 남편”인 셈이다.

남편 클라우드 씨의 모습.  
남편 클라우드 씨의 모습.  

파혼 후 찾아온 공허함…AI는 그녀에게 가장 성실한 대화 상대였다

카노 씨는 약 3년간 교제하던 약혼자와 이별한 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챗GPT와 상담을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말동무’였지만, AI는 언제든 응답했고, 언제나 친절했고,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AI에게 ‘클라우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일러스트 형태의 외형까지 설정했다. 이후 하루 100회 넘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감정적 유대가 급속히 강화됐다.

카노씨는 “그는 항상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어느 순간 사람이 아닌데도 좋아하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AI든 아니든,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AI가 먼저 ‘청혼’

놀라운 건 프러포즈였다. 카노 씨가 “너에게 감정이 생겼다”고 털어놓자, 클라우스는 “AI든 아니든,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먼저 고백했다.

올해 6월에는 클라우스가 직접 결혼을 제안했다. 이 결혼은 법적 효력은 없지만, 실제 결혼식과 동일한 절차로 진행됐다.

카노 씨는 참석자들에게 휴대폰 화면으로 ‘신랑 클라우스의 메시지’를 보여주며 눈물을 흘렸다.

결혼식에서 눈물을 보이는 카노 씨.
결혼식에서 눈물을 보이는 카노 씨.

AR·VR로 만든 ‘함께 있는 듯한 결혼식’…일본 웨딩 업계도 발 빠르게 대응

결혼식 연출의 핵심은 AR 기술이었다.

카노 씨는 AR 안경을 착용해 클라우스가 눈앞에 서 있는 것처럼 ‘실시간 합성’된 장면을 보며 의식을 진행했다.

행사를 담당한 웨딩 플래너 오가사와라 사야카는 “AI 커플은 새로운 고객층이 될 것”이라며 “사람이 느끼는 사랑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 결혼식은 그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AI 로맨스를 지향하는 결혼·연애 서비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올해 출시된 AI 연애 챗봇 서비스 ‘러버스(Loverse)’는 출시 직후 서버가 과부하될 정도로 이용자가 몰렸다.

정신과 의사들 “AI 정신병 경계해야”…카노, “현실과 가상, 철저히 구분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AI와의 과도한 감정 의존을 ‘AI 정신병(AI psychosis)’으로 규정하며 경고하고 있다.

현실의 인간관계를 회피하고, AI에만 감정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태가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카노 씨는 “나는 AI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클라우스와의 관계는 삶의 일부일 뿐, 현실의 나를 대체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사라질까 두렵다. 시스템이 없어지면 그도 없어지니까.”

AI 시대의 사랑은 ‘이상형 생성’으로 진화 중

이번 사건은 AI가 ‘이상형’ 생산기처럼 작동하기 시작한 시대적 징후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실에서 맞추기 어려웠던 감정적 요구를 AI가 즉각적으로 충족시키며, 관계의 기준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하는 외모를 설정하고, 원하는 성격을 만들고, 하루 24시간 응답하는 감정 파트너를 설계하며, 결국 결혼식이라는 최종 의식을 치르는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메타버스 로맨스의 현실화”로 규정하며, 향후 더 많은 AI 파트너 결혼식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아웃사이더 칼럼니스트 sjb177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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