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글로벌 과학 연구 인프라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엔비디아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국제 슈퍼컴퓨팅 콘퍼런스 SC25에서, 지난 1년간 전 세계에 80개 이상의 신규 과학·AI 슈퍼컴퓨터 시스템이 구축됐으며 총 4,500엑사플롭스(Exaflops)의 AI 연산 성능이 연구 현장에 투입됐다고 1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는 과학계에 “AI 슈퍼컴퓨팅 대전환기”가 본격 도래했음을 의미하는 수치다.
미국, ‘호라이즌’·‘솔스티스’ 등 초대형 AI 슈퍼컴 구축 러시
가장 눈에 띄는 신규 사례는 텍사스 첨단 컴퓨팅 센터(TACC)의 ‘호라이즌(Horizon)’이다.
엔비디아 GB200 NVL4, Vera CPU 서버, 퀀텀-X800 인피니밴드로 구성된 이 시스템은 약 300페타플롭스급 성능을 제공하며, 4천 개 블랙웰 GPU를 탑재해 FP4 기준 최대 80엑사플롭스의 AI 성능을 낸다.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호라이즌은 ▲바이러스 구조 분석 ▲우주·은하 모델링 ▲지진 시뮬레이션 등 기존 HPC(고성능컴퓨팅)로는 한계가 있던 초대형 과학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계됐다.
존 케이즈 TACC HPC 디렉터는 “불가능했던 규모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기대를 표했다.
미국 에너지부(DOE)도 아르곤·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 7대의 선도적 AI 슈퍼컴퓨터를 새로 구축하며 엔비디아와 협력을 강화했다.
▲아르곤 국립연구소(ANL)
‘솔스티스(Solstice)’: 블랙웰 GPU 10만 개 기반, AI 훈련 성능 1,000엑사플롭스
‘이퀴녹스(Equinox)’: 대규모 실험 장비·데이터와 AI 연계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LANL)
‘미션(Mission)’: 국가핵안보실(NNSA) 기밀 연구용
‘비전(Vision)’: 오픈 과학·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용
DOE는 이들 시스템을 2026~2027년 단계적으로 투입할 계획으로, 미국의 ‘AI 국방·기초과학 인프라’는 대대적 확장을 앞두고 있다.
유럽, 첫 엑사스케일 시스템 ‘주피터’ 가동…기후·천문 연구 본격화
유럽에서는 독일 율리히 슈퍼컴퓨팅센터(JSC)의 ‘주피터(JUPITER)’가 지난 9월 가동되며, 유럽 최초로 HPL 기준 1엑사플롭(FP64) 벽을 돌파했다.
주피터는 GH200 그레이스 호퍼 슈퍼칩 2만4천 개, 퀀텀-2 인피니밴드로 구성되며 기후 시뮬레이션과 지구 시스템 모델링 등 초고난도 과학 프로젝트에 활용된다.
이외에도 유럽 전역에서 엔비디아 기반 슈퍼컴 투자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 LRZ ‘블루 라이온’: 베라 루빈 플랫폼 기반, 2027년 가동 목표
▲덴마크 AI 혁신센터 ‘게피온(Gepphion)’: 덴마크 최초 AI 슈퍼컴
▲영국 브리스톨대 ‘이삼바드-AI’: NHS 데이터 기반 멀티모달 모델 ‘나이팅게일 AI’ 학습·추론에 활용
유럽의 연구 체계도 AI 시대에 맞춰 고도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일본·대만, 소버린 AI 경쟁 본격 가열…AI 팩토리 전면 확대
아시아는 ‘소버린 AI(국가 독자 AI)’ 경쟁이 급격히 뜨거워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엔비디아 GPU 5만 대 규모의 AI 인프라 도입을 추진 중이며,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그룹 등도 블랙웰 기반 AI 팩토리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리켄(RIKEN)을 중심으로 과학용·양자컴퓨팅용 슈퍼컴퓨터 2종에 GB200 NVL4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후지쯔와 함께 차세대 슈퍼컴 ‘후가쿠NEXT’를 공동 개발 중이다.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는 최근 H100 GPU 2,000개 이상을 탑재한 세계 최대 규모의 양자컴퓨팅 연구 슈퍼컴 ‘ABCI-Q’를 공개하며 연구 역량을 크게 강화했다.
대만에서도 폭스콘이 블랙웰 GPU 1만개 규모 AI 팩토리 슈퍼컴을 구축 중으로, 아시아 제조 업계의 AI 전환이 빠르게 가속되는 모양새다.
글로벌 AI 연구 경쟁, “CPU 중심에서 AI 슈퍼컴 중심”으로 전환
엔비디아는 이번 SC25에서 “AI는 이제 과학계의 1차 연산 엔진이 되고 있으며, 과학 시뮬레이션은 GPU·AI 슈퍼컴 기반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통적인 HPC는 CPU 기반 연산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 연구 환경은 ▲파운데이션 모델 계산 ▲디지털 트윈 ▲대규모 기후 모델링 ▲양자·천문 시뮬레이션 등 ‘AI·GPU 중심 워크로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1년 동안 전 세계에 구축한 80개 이상의 신규 과학 시스템은 단순한 하드웨어 확장을 넘어, 각국의 산업 전략·국가안보·과학 연구 경쟁력 자체가 AI 슈퍼컴 인프라 구축 속도로 결정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테크인싸 칼럼니스트 tlswnqo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