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도보다 연결감, 감정을 설계하는 버튜버 팬덤의 비밀

“누구를 좋아하세요?”

“아오쿠모 린이요.”

“왜요?”

“그냥 같이 살아가는 기분이에요.”

버추얼 유튜버, 흔히 ’버튜버(VTuber)’라 불리는 이 새로운 스타군은 이제 단순한 디지털 캐릭터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이들은 유튜브, 트위치, 치지직 같은 플랫폼 위에서 실시간으로 노래하고, 게임하고, 팬들과 잡담을 나누며, 점차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살아간다’. 그리고 팬들은 그들과 ‘소비’ 관계가 아니라, ‘생활’ 관계를 맺는다.

2편에서는 한국 기반의 글로벌 버튜버 그룹 ‘스텔라이브(StelLive)’와 국내 대형 기획사의 가상 걸그룹 ‘나이비스(Naivis)’를 비교하며, AI나 3D기술보다 더 중요한 팬덤의 본질을 살펴보고자 한다.

디지털 아이돌은 언제 진짜가 되는가.

나이비스는 한국 대형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가 만든 초거대 AI 기반 메타버스 아티스트다. 광활한 세계관과 XR 기술이 접목된 퍼포먼스, 고도화된 캐릭터 디자인,  그리고 실제 아이돌 그룹인 에스파와의 연동을 통해 매우 정교한 ‘구성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완성도 높은 기술과 세계관을 갖추었다 해도, 팬들에게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스크립트로 통제된 무대, 사전에 구성된 질문과 답변,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모범답안’처럼 들리는 멘트들. 이들의 등장엔 신기함은 있지만 ‘관계 맺음’의 여지는 많지 않다.

반면, 스텔라이브는 다르다. 이들은 소속사 대표 강지가 전직 스트리머였던 만큼, 버튜버로서의 ‘생활 밀착형 브랜딩’을 실시간 콘텐츠 위에 설계했다. 데뷔 초기부터 유튜브와 트위치에서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말실수도 하고, 게임 중 울기도 하며, 자취방에서 늦잠 자다 방송에 늦기도 한다. 이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이돌’이 아니라, ‘곁에 있는 친구’다. 팬들이 스텔라이브를 좋아하는 이유는 캐릭터가 예쁘거나 세계관이 화려해서가 아니다. “요즘 유니 방송 좀 안 하던데, 무슨 일 있나?” 하는 식의 관계적 감각이 중요하다.

‘콘셉트’가 아니라 ‘경험’으로 묶인 팬덤.

나이비스는 철저하게 기획된 정체성이다. 예를 들어, 한 멤버는 전설적인 AI 전사이며, 또 다른 멤버는 우주의 차원을 초월한 메신저다. 그 설정은 흥미롭지만 팬들의 일상과 맞닿기 어렵다. 그들의 세계는 ‘보는 세계’다.

반면 스텔라이브의 팬덤, ‘파스텔’은 ‘사는 세계’를 공유한다.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팬아트를 그리거나 팬게임을 만들고, 오프라인 팝업스토어나 팬미팅에서 직접 멤버들과 교류하며 ‘경험의 공동체’를 이룬다. 이들은 멤버들의 생일을 축하하고, 굿즈를 함께 사고팔며, 트위터 X에서 짤로 대화한다.

그 중심엔 ‘불완전함의 공유’가 있다. 데뷔 초기에 스트리밍 트러블로 음성이 잘려 나간 적도 있고, 멤버가 감기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사과한 날도 있다. 하지만 그 경험 자체가 팬들에게는 ‘우리만 아는 추억’이 된다. 이는 나이비스의 완벽한 연출 세계에서는 얻기 힘든 종류의 유대감이다.

팬은 ‘아이돌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버튜버 팬들이 실제로 멤버에게 바라는 건 ‘더 좋은 노래’나 ‘더 멋진 영상’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 이 사람이 어떤 기분일까?”, “어제 방송에서 울컥한 이유가 뭘까?” 같은 감정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스텔라이브의 대표 강지(정도현)는 이런 팬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그는 유메퍼센트라는 이전 버튜버 프로젝트의 실패 이후, 멤버들의 주체성과 감정 설계를 전면에 내세운 두 번째 도전, 스텔라이브를 재창립했다. 그리고 팬들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진심’을 알아챘다.

반면 나이비스는 여전히 ‘보여지는 존재’다. 무대 위에서 감탄은 받지만,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팬과 실시간으로 감정을 교류하진 않는다. 팬의 입장에서, 이들은 ‘연기되는 감정’이지 ‘공유되는 감정’이 아니다.

캐릭터보다 중요한 것은 ‘리얼한 감정 설계’.

XR 시대에 기술은 너무도 잘 발달했다. 초현실적인 그래픽, AI 기반의 자연스러운 음성 합성, 실시간 모션 캡처. 이제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다.

나이비스는 완벽하다. 스텔라이브는 불완전하다. 하지만 팬덤은 전자를 ‘관람’하고, 후자를 ‘사랑’한다. 왜일까? 그건 팬들이 기술의 완성도보다 ‘나와의 관계성’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스텔라이브는 버츄얼 유튜버라는 기술적 포맷을 ‘사람’의 확장으로 만들었고, 팬들은 그 확장된 사람과 시간을 공유하며 삶을 살아간다. 이 관계의 온기가 결국 팬덤을 만든다.

기술은 ‘조건’일 뿐, 팬덤은 ‘관계’다.

AI·XR 시대에 팬덤이 생기는 조건은 단순히 뛰어난 기술도, 아름다운 캐릭터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관계의 설계’다. 팬이 나를 보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설계. 팬이 나의 작은 변화에 반응하게 만드는 감정의 구조.

나이비스는 정교한 세계관과 아름다운 스테이지를 갖췄지만, 아직 그 감정의 구조에 팬을 초대하지 못했다. 반면 스텔라이브는 팬들과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감정의 씨앗이 되어,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은’ 팬덤을 만들었다.

이 시대의 팬덤은 더 이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집단이 아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감정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기록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팬덤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에서 시작된다.

다음 편 예고

3편에서는 감정설계의 일관성이 IP의 지속적인 인기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기획자, 연기자의 역할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감문전 기자 art@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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