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아이돌 시대, 아바타 퀄리티 보다 감정의 설계하라

“이 친구가 왜 이렇게 좋지?”

팬덤은 늘 이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막상 말하자면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매력은 기술보다 감정의 영역이고, 팬심은 스펙보다 공감의 축적에서 자라난다. 오늘날 AI 아이돌 그룹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가상이라서’가 아니다. 팬들이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플레이브(PLAVE)’다.

지난  21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플레이브 / 사진=블래스트 제공
지난  21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플레이브 / 사진=블래스트 제공

실존보다 생동하는 감정의 설계

플레이브는 2023년 데뷔한 한국의 버추얼 아이돌 그룹이다. 다섯 명의 멤버는 모두 실존하지 않지만, 가상이라는 점을 팬들은 거의 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너무 ‘살아있기’ 때문이다. 라이브 방송 중 캐릭터의 눈동자 떨림, 말버릇, 유머감각, 실수조차 모두가 감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는 고도의 기술력과 운영 전략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캐릭터로서의 일관된 서사와 감정선이다.

플레이브는 ‘존재하는 인물’처럼 행동한다. 각 멤버는 뚜렷한 성격과 일관된 반응을 가지고, 팬들과 상호작용하면서도 ‘역할놀이’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감정을 쌓고, 기억을 공유하고, 실시간으로 팬과 유대를 축적한다. 기술이 아니라 감정 설계의 완성도가 팬덤을 이끈 셈이다.

메이브는 왜 덜 사랑받았을까?

비슷한 시기, 메타버스 기반의 또 다른 AI 아이돌 ‘메이브(MAVE:)’가 등장했다. 기술적으로만 보면 메이브는 더 정교했다. 언리얼 엔진 기반의 실사급 그래픽, 언어 번역 AI, 자연스러운 모션 캡처. 글로벌 시장을 노린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뜨거운 초기 관심과 달리, 팬덤의 충성도는 플레이브보다 낮았다. 왜일까?

그 차이는 ‘감정 설계의 밀도’였다. 메이브는 기술 중심의 ‘보여주는 쇼’에 가까웠다. 캐릭터들은 아름답고 완벽하지만, 생동하는 감정이 없었다. 팬과의 상호작용은 적고, 캐릭터 서사도 일방적이다. 단발성 이벤트나 퍼포먼스로는 팬덤이 자라나기 어렵다. 사람들은 이유 없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팬덤은 “함께한 기억”의 누적이며, 메이브는 그 기억을 제공하지 못했다.

팬심은 감정의 누적이다

버추얼 팬덤 시대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정서적 축적’이다. 플레이브는 마치 동네 친구처럼 일상을 공유하며 팬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실시간 방송, Q&A, 연기, 노래, 게임을 넘나들며 캐릭터가 아닌 ‘개인’처럼 팬과 교감한다. 팬은 캐릭터의 성장에 기여하고, 그 결과에 함께 울고 웃는다. 이것이 감정 설계의 힘이다.

반면, 메이브는 콘텐츠로서 완성도는 높았지만 ‘함께 만든 서사’가 부족했다. 팬이 캐릭터의 삶에 개입할 여지가 없었고, 감정이 흐를 창구도 부족했다. AI 아이돌이지만, 실제로는 팬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팬덤은 관객이 아닌 공동 창작자를 원한다. 좋아하게 된 이유가 아니라, '좋아하게 된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진짜처럼 보이는 것 vs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

AI 아이돌은 결국 ‘진짜처럼 보이는 것’을 넘어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팬덤은 형성되지 않는다. 기술은 시작일 뿐, 감정의 설계 없이는 지속 가능한 팬덤을 만들 수 없다.

플레이브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AI든 가상이든, 팬은 감정을 좇는다. 팬덤은 감정의 연속선 위에 있다. 고퀄리티 기술은 감탄을 자아낼 수 있지만, 감정이 없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

[다음 편 예고]

2편에서는 감정 설계를 넘어서 ‘생태계로 진화하는 팬덤’을 다룬다. 스텔라이브와 나이비스라는 두 개의 버추얼 유튜버 그룹을 중심으로, 팬이 단순 소비자를 넘어 창작 생태계의 일원이 되는 현장을 분석한다.

감문전 기자  art@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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