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경험 디자인의 매력 알릴 것"

'자연스럽다'는 말은 일상에서 널리 사용되지만 그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하지만은 않다. 누군가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정돈된 풍경을 자연스럽다고 한다. 그러나  거친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다고 인식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는 공원과 정원, 도심 속 조경은 과연 얼마나 자연스러울까? 어쩌면 '자연스럽다' '아름답다'는 수식어를 단 수많은 조경 공간은 결국 사람이 정한 규칙과 설계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김광수 마초의사춘기 대표는 "조경을 단순히 부드럽고 정형화된 방식으로만 접근하기보다 먼저 자연을 사랑하고 향유하며 보전하려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날 것 그대로의 강인한 모습이 엿보이는 '마초', 그리고 어쩌면 가장 순수한 감성일지 모르는 '사춘기'라는 두 단어가 결합된 회사 이름이 돋보인다. 그 돋보이는 이름처럼 마초의사춘기는 대한민국의 '조경-플랜테리어 2.0 시대' 시작을 알리고 있다. 


Q.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광수 마초의사춘기 대표.(사진=마초의사춘기)
김광수 마초의사춘기 대표.(사진=마초의사춘기)

안녕하세요, 저는 마초의사춘기 대표 김광수입니다. 마초의사춘기는 조경과 플랜테리어(식물+인테리어)를 도구로 삼아 사람들의 자연 경험 방식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자연 경험 솔루션’ 제공 스타트업이에요.

저는 원래 전공이 패션 디자인이었어요. 프랑스 파리 소재의 패션스쿨 에스모드(ESMODE)에서 유학했고 발망, H&M 등 브랜드에서 인턴으로 경험을 쌓았었죠. 당시 제 목표는 하나였어요. 제가 가고 싶은 패션 브랜드에 입사해 인정받으면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삼성물산(舊 제일모직)에서 여성복 브랜드 구호(KUHO)의 파리 컬렉션 팀에 소속돼 첫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안정된 직장에 소속돼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어서 굉장히 만족했어요. 하지만 옷은 유행과 계절을 타면서 금방 소멸하는 경향이 있죠. 몇 달 동안 공들여 디자인한 옷이 소비자들에게는 한두 달 만에 버려지는 것을 보면서 회의감이 생겼어요.

휘발성 높은 디자인 대신 ‘사라지지 않는, 버림받지 않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자연과 환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자연은 인간이 쉽게 소비하고 버릴 수 없는 대상이니까요.

결국 잘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제가 새롭게 설정한 꿈인 ‘없어지지 않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까 고민하다가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보자는 생각에 약 2년간 꽃집과 분재원, 화훼 운송 등 해당 시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직접 경험했어요. 자연스레 조경과 플랜테리어 분야를 접하며 ‘자연’으로 나만의 디자인을 적용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죠.

그러다 가구 브랜드 한샘(HANSSEM)과 협업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고, ‘지구플랜트’ PB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조경-플랜테리어 분야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2019년에는 마초의사춘기 법인을 세우고 현재까지 지속 가능한 환경 디자인을 시도하며 공간의 가치를 높여오는 일을 해오고 있어요.

Q. 창업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진=Pexels
사진=Pexels

프랑스 유학시절, 현지에서 가드닝(Gardening) 문화를 접하게 됐어요. 귀족 문화가 남아있는 프랑스에서 정원을 가꾸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집이 크지 않아도 정원이 잘 관리돼 있으면 소위 ‘배운 사람’이 사는 곳으로 인식돼요. 때문에 프랑스에서 가드너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며 대우받는 직업이죠.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보니 가드너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습니다. 가드닝을 배우고 싶어서 수업을 찾아보려 해도 분갈이 수업이 대부분이었고, 가드닝을 배우기 위해선 플로리스트를 찾아가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가드너와 플로리스트 직업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에요. 마치 인테리어 전문가에게 건축 도면을 배우라는 말과 같죠. 그때부터 제가 직접 배우며 국내 가드닝 문화를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처음엔 절대 창업 생각이 없었는데요.

그럼에도 당시 조경 산업이 국내에서 아직 자리 잡지 않은 것을 보고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한국은 조경에 필요한 자원이 풍부하고 산림도 많아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진=코리아메타버스저널
사진=코리아메타버스저널

그런데 호기롭게 창업해보니 왜 아무도 이 시장에 대해 시도하지 않았는지를 깨달았어요. 제가 바라본 국내 조경 산업은 폐쇄적인 느낌이 강했어요.

그래서 저도 기존 조경 방식이 아닌, 제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마음먹었어요. ‘플랜테리어’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조경과 공간 디자인을 결합해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어요.

창업 당시에 ‘식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갖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주변에서는 제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를 몰랐고 이해도 못 했어요. 당장 주변부터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아직 사람들이 조경의 가치를 모르기도 했고, 식물이 많아졌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전통적인 조경이 아닌 브랜드 매장, 팝업스토어, 상업 공간에 조경을 접목해 ‘조경도 하나의 디자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마초의사춘기를 국내 1세대 ‘자연 경험 디자인’ 기업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Q. 디자인은 '인위적 창조' 행위인데, '자연스러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요?

보통 사람은 과거를 추억할 때, 자연 공간에서 느꼈던 ‘감각’을 기억으로 저장하고 떠올리는 편이에요. 저도 부모님과 무주 리조트에 가서 썰매 타고 아버지와 등산했던 기억이 남아있죠.

모든 세대 공통적으로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다니며 쌓은 추억들은 평생 간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어떤 자연 경험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힘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러한 경험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저희가 실제로 썰매장을 만들거나 대형 공원을 조성할 순 없지만, 이러한 것과 가장 유사한 경험을 디자인하고 싶었어요.

코엑스 별마당도서관 '시가 불러온 봄' 프로젝트. (사진=마초의사춘기)
코엑스 별마당도서관 '시가 불러온 봄' 프로젝트. (사진=마초의사춘기)

지난 2022년도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에서 진행된 ‘봄날의 시-새봄의 이유’ 도서전이 그 예인데요. 프로젝트를 통해 참관객이 시구절을 읽으며 향기를 맡고, 실제 생화를 만지면서 시집을 구매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했어요.

봄날의 분위기를 느끼며 구입한 시집을 읽는 동안에는 당시 맡았던 향, 느꼈던 공간이 계속 기억나게 되겠죠. 자연의 섭리를 온전하게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디자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연 경험 디자인’이에요.

Q.  마초의사춘기가 설계한 대표적인 '자연 경험 디자인' 공간을 소개한다면?

닷밀 제주 워터월드 프로젝트. (사진=마초의사춘기)
닷밀 제주 워터월드 프로젝트. (사진=마초의사춘기)

제주도에 위치한 국내 최초의 워터 미디어 테마파크 ‘워터월드’입니다. 버려진 사우나를 도시재생 차원에서 테마파크로 변경하면서 가족과 연인, 친구들끼리 함께 방문할 수 있는 지역의 관광 명소로 재탄생 시켰어요.

저희는 워터월드에서 미디어 콘텐츠를 제외한 환경 디자인과 연출을 담당했어요. 워터월드는 이제 많은 분들이 꾸준히 찾고 싶어지는 장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관광산업도 이제는 점점 ‘경험 중심’으로 바뀌고 있어요. 볼거리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고 그 경험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해졌어요. 저희가 만드는 공간은 소비의 공간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다시 찾고 싶어지는 곳’이죠.

Q.  공간 콘셉트와 어울리는 인테리어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일단 디자인이라는 언어를 통해 트렌드를 읽고 상대방과 공감하는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에요.

마초의사춘기는 처음부터 ‘디자이너 그룹’으로 정체성을 확립했죠. 조경을 예술 콘텐츠로만 만들지 않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니즈에 맞게 디자인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합니다.

공간 디자인을 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건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죠. 실제 사용자들의 성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야 돼요. 요즘 세대가 변하면서 사용자들의 취향도 바뀌고 있는데, 저희도 각각의 타깃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계속 연구하면서 ‘공감’하려고 노력합니다.

직원들과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김광수 마초의사춘기 대표 (사진=마초의사춘기)
직원들과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김광수 마초의사춘기 대표 (사진=마초의사춘기)

Q. 직접 구축한 데이터도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현재 저희가 유지하고 관리하는 식물 데이터만 1만 개가 넘어요. 공간을 꾸미고 그 공간에서 식물이 어떻게 유지될지를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접근합니다.

모 기업 사무실을 예로 들어볼게요. 일정 평수에 특정한 층수, 건물의 연식과 냉난방 시스템까지 고려한 후, 1년 동안 현장에 놓인 식물을 유지-관리하면서 데이터를 분석해요. 그리고 새롭게 조성하는 공간이 기존의 데이터와 유사하다면, 그 정보를 기반으로 어떤 식물이 적합할지를 정하죠.

신규 공간을 만들 때는 기존 데이터도 활용해야 하고 그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 정량적 요소와 디자인 콘셉트를 결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구축한 DB는 일반적인 참고 자료가 아니고 실제 공간에서 최적의 조경 설계를 결정짓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어요.

Q. 온-오프라인의 결합이라고 하면 '피지털'(Physital)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사진=코리아메타버스저널
사진=코리아메타버스저널

네 피지털이에요. 기업들도 최근 피지털 브랜딩, 피지털 마케팅을 많이 시도하고 있죠.

피지털은 젊은 세대만을 위한 개념이 아니예요. 오히려 경제력을 갖춘 액티브 시니어, 더 쉽게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피지털’ 경험이 최적의 솔루션이 될 수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스크린 골프입니다. 원래 골프는 폐쇄적인 스포츠였죠. 비용도 비싸고 시장이 확대되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스크린 골프가 나오면서 접근성이 높아졌고 중장년층도 쉽게 배우며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어요.

현재는 중장년층이 중심이지만 점점 다양한 세대로 확장될 거예요. 결국 피지털을 통한 경험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사람들이 그 경험을 추구하면서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거라고 예상합니다.

Q. 피지털 관점의 프로젝트 진행 사례가 있나요?

도어투성수 코카콜라 오프라인 팝업 프로젝트. (사진=마초의사춘기)
도어투성수 코카콜라 오프라인 팝업 프로젝트. (사진=마초의사춘기)

지난 2022년 성탄절 시즌에 성수동 '도어 투 성수'에서 코카콜라 팝업을 진행했습니다. 올림플래닛이 제공하는 XR 팝업 솔루션을 통해, 저희가 조성한 공간을 디지털 환경에서도 경험할 수 있도록 구현했어요.

코카콜라는 글로벌 브랜드에요. 국내에서 진행한 팝업이 국내 소비자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 팬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하는것이 중요했죠. 그런데 올림플래닛 XR 기술을 활용해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고 50개 국 이상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디지털 기반의 '글로벌 팝업'으로 확대할 수 있었어요.

사진=엘리펙스 PLACE 360 캡처
사진=엘리펙스 PLACE 360 캡처

Q.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너무 많지만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테마파크 사업이에요. 놀이기구만 있는 게 아니라 자연 콘텐츠를 활용한 체험 요소를 꾸준히 발전시키고 싶어요.

두 번째는 공원 리모델링입니다. 공원은 계절마다 자연스럽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지속적인 변화를 줄 수 있어요.

공원이 콘텐츠화된다면 지속 가능하고 가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앞으로도 마초의사춘기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선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도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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