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뭐부터 조사하면 될까요?" 묻는다면 이미 늦었다
며칠 전, 노희영 대표의 유튜브 채널 ‘큰손 노희영’을 우연히 보게 됐다.
출처=유튜브 '큰손 노희영'
나도 CJ ENM 출신이라 예전부터 그분에 대한 다양한 뒷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남은 건, 그녀가 가진 직업에 대한 태도였다.
“나는 워라밸 같은 건 애초에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삶 전체가 리서치다.”
그 말에, 가슴이 콱 막히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그제야 리서치를 시작한다. 시장 조사, 트렌드 서치, 레퍼런스 수집.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 전에 내가 얼마나 안테나를 켜고 있었는가다. 리서치는 정보를 찾는 행위가 아니라, 관찰하고, 반응하고, 축적하는 감각의 훈련이다. 결국, 삶 전체가 리서치여야 진짜 통찰이 가능하다.
나는 이를 ‘평상시 리서치’라고 부르고 나와 같이 일했던 많은 멤버들에게 이게 결국 직업인으로 가장 중요한 태도라는 이야기를 하곤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습관처럼 하는 리서치. 길을 걷다 문득, “왜 저 간판은 유난히 눈에 띄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이 분위기에 왜 이 BGM이지?” 넷플릭스를 보다가, “이 장면 전환은 관객의 감정을 어떻게 이끌어내지?” 이건 보고서에 쓸 리서치가 아니다. 하지만 몸에 남는다. 그리고 그 차이가 결과물로 드러난다.
『총, 균, 쇠』에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격차를 “축적된 우연한 경험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정보도 마찬가지다. 우연한 만남, 대화, 관찰, 영감이 쌓이고 쌓여 차이를 만든다. 결정적인 순간에 통찰을 꺼내는 사람은, 평범한 순간에 집중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좋아하지 않으면, 일상에 안테나를 켤 수 없다. 일이 따로 있고, 삶이 따로 있는 사람은 리서치를 업무 시간 안에만 한다. 그러나 안테나를 항시 켜두는 사람은, 삶 전체를 하나의 필드처럼 살아간다. 좋아하는 일은 사치가 아니라, 축적 가능한 삶을 위한 전략이다.
광고대행사 시절, 브리프 회의가 끝나면 어김없이 들리던 말이 있다. “이제 리서치 좀 하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왜 지금? 왜 이미 방향이 정해진 다음에야 리서치를 시작하지?
그때 하는 건 탐색이 아니다. 검증을 위한 조사일 뿐이다. 진짜 리서치는 방향을 바꾸게 만들고, 질문을 다시 던지게 만든다.
나는 대학교 이후에는 거의 모든 신문과 주요잡지를 다 읽어왔다. 활자중독 성향이 있어서 책을 즐긴다.비슷한 주제의 책도 계속 산다. 물론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상관없다. 중복되는 건 과감히 넘기고, 새로운 관점이 발견되면 내 머릿속 학습 데이터가 업데이트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연결된다. 몇 달 전 읽은 마케팅 책의 문장과, 어제 본 유튜브의 진화심리학 강의와 동물의 왕국 다큐가 하나로 붙는다. 내가 만든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 한 장은, 사실 그 모든 무의식적 축적의 산물이다.
이건 습관이다. 매일의 리듬이다. 독서, 관찰, 대화, 기록 — 이 모든 게 내게는 리서치다.정리되지 않아도 좋다. 명확하지 않아도 괜찮다. 기록하느라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다. 시간이 흐르면 연결된다. 그게 진짜, 내 것이 된다.
결국, 삶 전체를 리서치처럼 사는 사람만이, 프로젝트가 닥쳤을 때 ‘준비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준비된 사람만이,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신승호
코리아메타버스저널 발행인.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CPND)를 아우르는 혁신적인 브랜드 구축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전 와디즈 및 쏘카 CMO, Daum 브랜드 마케팅 총괄, Mnet 편성 PD, Dentsu AE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XR·AI 기반 몰입형 내러티브 전략과 메타버스 콘텐츠 생태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