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정의하려는 시대, 그 프레임을 깨보자

누구나 일을 하며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 일을 통해 성장 중인 우리 시대 스마트 워커를 위한 가이드.

이미지=우리들의 MBTI 서적
이미지=우리들의 MBTI 서적

사주팔자, 띠, 혈액형, 별자리, 그리고 MBTI – 조직은 왜 ‘나’를 알고 싶어 할까?

“새로 입사한 헤이든은 MBTI 뭔가요?” 요즘 사무실에서 이 질문은 인사말 수준이다. 그런데 90년대엔 이게 혈액형이었다. 그 전엔 띠였고, 부모님 세대는 사주팔자였다. 시대만 바뀌었지, 사람을 분류하려는 본능은 여전하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점집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면 더 실감난다. 당선 여부를 점쟁이한테 묻는 것처럼, 사람들은 늘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미래를 알기 위해선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의하고, 남을 예측하고 싶어 한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더더욱. “난 ENFP니까 즉흥적이야.” “난 A형이라 소심해.” “난 뱀띠니까 머리가 좋아.” 이렇게 말하면 왠지 내 행동이 정당화되고, 상대방도 나를 쉽게 이해할 것 같다. 문제는 그 프레임이 나를 가두기 시작할 때다. “난 INTP니까 발표는 못 해.” “난 B형이라 대충하는 게 스타일이야.” 순간, 나는 내가 아니라 MBTI라는 틀에 맞춘 캐릭터가 된다.

그런데 왜 조직은 이런 분류법에 열광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A형은 꼼꼼하니까 서류 정리는 맡겨.” “ENFP는 창의적이니까 브레인스토밍에 넣고.” “소띠는 성실하니까 보고서 작성은 맡겨도 돼.” 관리가 쉬워지고, 갈등이 줄어드니까.

문제는 틀에 갇힌 사람들은 그 틀에 맞춘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 내가 선택한 프레임이 아니라, 프레임이 나를 정의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온다. 회사에서 “너는 INTP니까 분석만 해”라고 하면, 나는 내향적인 분석가가 되어버린다. 원래는 발표도 잘할 수 있었는데, 스스로 그 가능성을 접어버리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프레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MBTI는 나를 설명하는 지침서가 아니라, 상황에 맞춰 활용하는 전략서여야 한다. “내가 INFP인데, 이번에는 분석적인 역할이 필요하네. 어떻게 하면 될까?” “난 B형이지만, 오늘은 A형처럼 꼼꼼하게 해보자.” 나를 고정시키는 게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모드를 켜는 거다.

포스터=영화 B형남자친구
포스터=영화 B형남자친구

사주팔자, 혈액형, 별자리, MBTI. 이 모든 도구는 결국 나를 이해하려는 프레임일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를 정의하는 게 아니라, 나를 설계하는 거다. 나는 INFP니까 내향적인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서 필요한 모드가 뭔지를 찾는 것. 나는 A형이라 소심한 게 아니라, 오늘은 B형처럼 즉흥적으로 움직여보는 것.

결국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설계하는 일이다. 틀에 맞추지 말고, 틀을 활용해서 새로운 나를 만드는 것. 이제, 그 스케치북에 나만의 서사를 그릴 차례다.

사진=MBN현역가왕, 최수호 '너T야'
사진=MBN현역가왕, 최수호 '너T야'

P.S 참고로  MBTI의 과학적 유용성은 정말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MBTI는 심리학적 도구로서 과학적 신뢰성과 타당성이 낮다는 것이 주류 심리학계의 평가이다. 재검사 시 결과가 쉽게 바뀌고, 성격 특성을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하며, 중요한 삶의 결과를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다. 미국심리학회도 MBTI를 과학적 심리검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MBTI는 자기 이해와 대인관계 개선을 위한 매력적인 도구로서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MBTI를 사용할 때는 과학적 근거가 약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자기성찰이나 대화의 출발점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직업 상담이나 인사 평가 등 중요한 결정에는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심리검사를 병행하는 것이 권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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