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귤래리티(Singularity:기술적 특이점)’.

30여 년 전, 미래학자 버너 빈지가 예고한 이 개념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순간을 의미한다. 요즘 그 특이점이 개인 차원에서도 현실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식의 한계, AI와 함께 넘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개인이 지식적으로, 정신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평생에 걸쳐 축적해야 겨우 닿을까 말까 했던 수준이 이제는 일상의 도구로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MIT 연구에 따르면, GPT-4를 활용한 작업자의 업무 효율이 평균 40% 향상됐다. 특히 성과가 낮았던 작업자는 43%나 생산성이 뛰었다. 생성형 AI는 우리 인간의 잠재력을 증폭시키는 ‘디지털 스테로이드’다. 이 속도라면 뛰어난 개인은 조만간 자신의 '싱귤래리티적 도약' 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과학적 엄밀함으로 따지자면 '개인의 싱귤래리티'는 과장된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AI가 일상화된 지금, 우리의 지식과 사고의 범위는 분명히 과거와는 다른 차원으로 넓고 크고 깊게 확장되고 있다. 

싱귤래리티라는 개념

'싱귤래리티'라는 용어는 원래 물리학에서 탄생했다. 블랙홀 중심부처럼 기존의 법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지점, 모든 질서가 붕괴하는 곳을 뜻한다. 버너 빈지는 이 개념을 기술로 확장했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순간, 인류는 문명의 블랙홀로 들어서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이점 이후의 세계는 우리가 현재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이미지=ChatGPT(DALL-E) 생성
이미지=ChatGPT(DALL-E) 생성

2005년 저서 <The Singularity is Near>를 통해 이 용어를 대중화한 레이 커즈와일은 같은 지점을 빈지와는 반대로 인간의 진화를 촉진하는 순간으로 바라봤다. 2029년이면 AI가 인간 지능에 도달하고, 2045년에는 인간과 기계가 융합하는 '초지능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이점 이후의 세계는 지금까지의 질서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선으로 새로운 문을 바라봤다. 빈지는 경고했고, 커즈와일은 희망했다.

보통 사람도 특이점적 도약이 가능한 시대

인류의 모든 지식을 학습한 생성형 AI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면서 AI와 협력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수십 배 속도로 정신적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지식과 통찰의 습득 속도가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전혀 모르던 부분도 금방 배울 수 있고, 다른 분야와의 통섭도 쉬워졌다. 직관 조차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단순히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스파크 처럼 남과 비교하기 어려운 능력과 실력과 경험을 가진 수퍼 개인들이 곳곳에서 나타날 때가 됐다. SCI급 논문을 생성형 AI 몇 종을 함께 돌려가며 한 달 만에 썼다는 어느 교수의 얘기는 실화다. 

이미지=ChatGPT(DALL-E) 생성
이미지=ChatGPT(DALL-E) 생성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너무나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기존의 비즈니스와 일자리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늘면, 지식 서비스 자체가 가치를 잃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양극화라는 커다란 과제가 남는다.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점점 더 수준이 멀어질 것이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현실이기 때문에 앞으로 AI 활용 역량을 높이는 교육과 복지가 더 강화될 것이다. 돈을 많이 버는 AI 기업에 높은 세금을 매기고, 그렇게 확보한 재원으로, 기본적인 복지 수준을 높이겠다는 공약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커즈와일의 말대로 개인차원의 '특이점적 순간'이 인간 진화의 촉진제가 되기를 바란다. 솔직히 인류가 쌓아온 지식, 교육, 경험이 완전히 무력화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에 대한 한단계 더 나아간 깨달음도 얻을 수 있기 않을까.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능력 즉 의미, 윤리, 감정, 사유 등이 인간의 본질 이란 인식 말이다. 그래서 우선, 이런 결론을 한번 짓고 싶다. 공감하고, 반성하고, 상상하고, 질문하는 인간, 그런 인간이라야 AI와 함께 새로운 문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남는다. 의미를 찾고, 새로운 길을 묻는 일이다.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인간은 의미로 기술을 초월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생성형 AI를 지켜보면서 되뇌어 보는 다짐이다.  

권영설 주필 yskwon@kmjournal.net

권영설 칼럼니스트는 한국경제신문 기자, 논설위원, 기조실장 등을 지냈고 이코노믹데일리 편집국장, 미디어펜 사장을 역임한 언론인이다. 형지그룹 기조실장과 형지엘리트 사장 등 기업인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섬유신문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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