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 수출 통제는 강화
(워싱턴=연합뉴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 정부 말기에 마련된 국가별 AI 반도체 수출통제 시스템을 폐기하고, 보다 단순한 방식의 규정으로 대체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복잡한 등급제 대신 실용성과 통상 전략 중심의 새 시스템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현지시간 7일 블룸버그와 로이터에 따르면, 미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은 바이든 정부가 마련했던 국가별 등급제 기반의 'AI 확산 프레임워크'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관료적이며, 미국의 혁신을 저해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폐기하고 단순화된 규칙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1월, 한국과 같은 동맹국, 일반국, 중국·러시아·북한 등 우려 국가로 구분해 각 등급에 따라 AI 반도체 수출을 차등 통제하는 방식을 도입한 바 있다. 동맹국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지만, 일반국은 상한선을 설정하고, 우려국은 강력히 차단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 조치를 시행하지 않기로 하고, 오는 15일 발효 예정이던 해당 규제를 무효화할 계획이다. 대신, 말레이시아·태국 등 중국으로 미국산 반도체를 우회 수출하는 국가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포함한 새로운 규칙을 마련 중이다. 기존의 직접적인 수출 규제보다는 우회 경로 차단에 무게를 둔 전략 전환이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트럼프 정부가 추진 중인 각국과의 통상 협상과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발표한 상호관세 조치를 시작으로 주요국들과 무역 협상이 진행 중이며, AI 반도체 수출 통제 문제 역시 향후 무역협정의 일부로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 3월,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를 간접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향후 각국과 체결하는 무역협정에 우회 수출 통제 조항을 포함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이번 정책 변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앞두고 발표돼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2일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을 방문할 예정으로, 이들 국가 역시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한 대상에 포함돼 있다. 블룸버그는 이번 조치가 중동과의 협상에서 보다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행사에서 중동 국가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 완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렇게 할 수도 있다”며 “곧 발표될 것”이라고 답했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