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속도는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다."

경영구루 엘리야후 골드랫이 남긴 이 말은 오늘날 회사마다 울려 퍼지는 경고음에 정곡을 찌른다. 그의 제약이론(Theory of Constraints)에 따르면, 전체 시스템의 성과는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 결정된다. 데이터 센터는 초마다 로그를 쏟아내고, 공장 로봇과 사무실 AI가 동시에 알람을 띄우는데, 회의실에서 "좀 더 두고 보자"는 한마디가 나오면 모든 흐름이 그 속도로 떨어진다.

달 착륙을 살린 60초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을 향해 내려가던 마지막 150미터에서 컴퓨터가 '1202'라는 과부하 경고를 울렸다. 휴스턴 관제소는 숨을 고른 뒤 짧게 외쳤다. "Sixty seconds(60초)!"

NASA가 미리 써둔 비행 규칙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경고가 뜨면 60초 안에 '간다(Go)' 또는 '멈춘다(No-Go)'를 정하라. 정하지 못하면 자동 중단." 책임자는 단 한 명, 25살 엔지니어 스티브 베일스였다. 그는 17초 만에 "Go!"를 외쳤고, 남은 40여 초로 닐 암스트롱은 착륙선을 달에 안착시켰다. 시간과 권한을 사전에 숫자로 못 박아둔 60초 룰이 인류의 첫 달 착륙을 완성한 순간이었다.

NASA의 60초 룰 덕분에 달 착륙은 성공할 수 있었다. 이미지=챗GPT(DALL-E) 생성
NASA의 60초 룰 덕분에 달 착륙은 성공할 수 있었다. 이미지=챗GPT(DALL-E) 생성

이후 스페이스셔틀, 스페이스X, 항공기 GPWS(Ground Proximity Warning System:지상접근경보장치) 경고까지 '타임박스+단일 책임자' 원칙은 우주와 하늘을 지배하는 표준이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빨리 고칠 수 있는 잘못된 결정이, 늦은 결정보다 늘 낫다."

한국 현장의 60초 혁신

국내 제조업계도 이미 이 원칙을 실행 중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프레스·도장 라인에서 '3분 골든타임'을 운영한다. 위험 경보가 울리면 180초 안에 과장·조장·안전담당이 동시에 '리셋'이나 '셧다운'을 결정한다. 시간을 넘기면 라인이 자동으로 멈춘다. 덕분에 안전사고가 대폭 감소했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는 독성 가스 알람에 '30-60-300' 시계를 맞췄다. 30초 안에 배기, 60초 안에 가스 차단, 300초 안에 공정 재가동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시설 전체가 멈춘다. 불산 누출 사고 이후 이 시스템 도입으로 대형 화학사고 발생률이 현저히 줄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열연공장은 쇳물 폭발음을 감지하면 60초 안에 긴급 배수(블로우다운) 여부를 정한다. 이 60초를 넘기면 컴퓨터가 곧장 설비를 멈춘다. 이 원칙 도입 후 크고 작은 사고가 대폭 감소했다.

우물쭈물에 대가가 따르기는 IT 업계도 마찬가지다. 가트너 조사에 따르면 대형 IT 장애의 4분의 3은 '책임 공백'과 '결정 지연'이 원인이다. 시스템 다운타임 1분마다 평균 수천 달러가 증발한다. 결국 돈을 날리는 것은 기술 부족이 아니라 느린 결정이다.

초연결 시대, 더 절실한 60초

우리는 지금 초연결 시대 한복판에 있다.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이 결합된 스마트 시스템에서 클릭 한 번이 전 세계 기계를 멈추거나 달리게 한다. 생성형 AI는 밀리초마다 가격과 재고를 재계산한다. 이 빠른 세계에서 한가롭게 회의를 하고 결정을 미루는 사이, 시장은 다른 회사로 넘어간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정보 70%가 준비되면 결정을 내려야 한다. 90%까지 기다리면 늦다"고 말했다. 인텔의 전설 앤디 그로브도 "느린 결정은 기회를 죽인다"고 잘라 말했다. 그들은 빠른 결정을 '용기'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한 회사의 속도는 가장 느린 부분의 속도다. 용기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이미지=챗GPT(DALL-E) 생성
한 회사의 속도는 가장 느린 부분의 속도다. 용기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이미지=챗GPT(DALL-E) 생성

안전이 핵심인 제조 라인만의 이슈가 아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기회는 날아가고 리스크는 증폭되는 시대다. 회사 생존과 성장을 위해 조직 자체의 '60초 원칙'을 설계해야 한다.

원칙이 있다. 첫째, 시간을 숫자로 정하라. 알람 등급마다 10초·60초·10분 같은 '결단 창'을 회사 규칙에 새겨둔다. 다음으로, 단일 책임자를 지정하라. 알람마다 책임자 이름을 명기한다. 결정해야 할 사람이 여럿이면 아무도 결정하지 못한다. 최근 필자는 영상 PD에게 "영상 완성 후 단톡방에 게시하고, 30분 내 상사들이 의견을 안내면 무조건 콘텐츠를 발행하라"고 지시했다. 끝으로 반복 연습이 중요하다. NASA는 달 착륙 전 해에 모의 경보 훈련을 134번 실시했다. 위기 상황에서 몸에 밴 반응만이 올바른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초연결 시대의 경고음은 더 자주, 더 크게 울리게 돼있다. 공정 마다, 가치 사슬 마다 AI가 들어가있기 때문이다. 조직이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알람이 아니라 우물쭈물이다. 특히 지위에 상관없이 책임자를 지정하는 것이 요긴하다. '일사분란' 하지 않은 요즘 조직 구조에서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권영설 주필 yskwon@kmjournal.net

권영설 칼럼니스트는 한국경제신문 기자, 논설위원, 기조실장 등을 지냈고 이코노믹데일리 편집국장, 미디어펜 사장을 역임한 언론인이다. 형지그룹 기조실장과 형지엘리트 사장 등 기업인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섬유신문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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