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5년, 페스트가 영국을 휩쓸었을 때, 스물세 살의 아이작 뉴턴은 케임브리지를 떠나 고향 울즈소프의 농가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그는 만유인력과 미적분의 씨앗을 틔웠다. 10년 뒤, 뉴턴은 왕립학회 동료 로버트 훅에게 편지를 쓰며 이렇게 밝혔다.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1675년 2월 5일 서한)

여기서 ‘거인’은 누구였을까? 뉴턴 보다 400여년 전의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50년 앞서 망원경을 든 갈릴레이, 그리고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이 쌓아 올린 수학·천문 자료였다. 뉴턴은 이들의 연구를 디딤돌 삼아 지평을 넓혔다고 고백한 것이다. 더 거슬러 가면, 12세기 프랑스 수도사 버나드 오브 샤르트르가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라고 한 기록도 있다. 이는 학문의 ‘지층’을 인정한 표현이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은 인류의 지적 축적을 '거인의 어깨'로 표현했다. 이미지=ChatGPT(DALL-E) 생성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은 인류의 지적 축적을 '거인의 어깨'로 표현했다. 이미지=ChatGPT(DALL-E) 생성

전통적으로 거인의 어깨는 인류가 축적한 지식과 통찰을 뜻했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였다. 플라톤, 맹자, 셰익스피어, 다윈을 만나, 그들의 사유 위에 올라서야 세상이 탁 트이게 보이기 때문이었다. 청춘을 바쳐 공부하며 ‘거인의 어깨’를 찾는 일은 그 자체로 값진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전혀 다른 풍경에 서 있다. 스마트폰 속 생성형 AI는 클릭 한 번으로 거인의 어깨를 빌려준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요청만 하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구조를 흉내 낸 글을 쓰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비즈니스 전략까지 제안한다. “주자와 율곡의 ‘경(敬)‧성(誠)’ 개념을 인사평가 프레임에 입혀 보고서를 써 줘”라고 해도, AI는 곧바로 대화형 초안을 내놓는다. AI는 언뜻 황금열쇠처럼 보인다. 이제 거인이 필요 없는 세상인가?

이제 거인은 주머니 속에...지식 동반자로 삼아야

생각해 볼 일이다. 거인의 어깨가 주는 힘은 ‘높이’뿐 아니라 ‘무게’에 있었다. 한 줄 문장을 이해하려 원문과 주석, 사료를 뒤지는 지난한 과정이 사고를 단련시켰다. 고전을 읽는 일은 “왜?”를 끈질기게 묻고, 모순된 주장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경험이다. 

AI는 이 고통을 덜어주지만, 동시에 지적 근육을 키울  기회를 뺏아간다. AI의 답변은 빠르지만, 맥락을 놓치거나 편향된 데이터를 반영할 수 있다. 거인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됐지만, 그 무게감을 잊으면 우리는 비판적 사고를 잃을 위험도 있다.

선택지는 분명하다. AI를 개인의 ‘제트팩’으로 삼아 스스로 질문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지식 자동 판매기’로만 소비할 것인가. AI에게 “플라톤의 <국가>를 현대 민주주의와 비교해 줘”라고 요구하고, 답변에서 논리적 허점을 찾아 다시 묻는 호기심과 비판력이 필요하다. 책에서 느낀 울림을 스스로의 언어로 옮기는 창조력도 잃지 말아야 한다.

인류가 축적한 대부분 지식을 생성형 AI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논리적, 비판적 사고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미지=ChatGPT & ImageFX 생성
인류가 축적한 대부분 지식을 생성형 AI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논리적, 비판적 사고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미지=ChatGPT & ImageFX 생성

필자는 후배들에게 책을 권할 때 요즘은 꼭 AI를 토론 상대로 활용해보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맹자의 성선설을 현대 윤리 딜레마에 적용하는 방법을 AI와 토론해 보는 식이다. AI를 활용해 사고의 지평을 얼마든지 넓힐 수 있다. 

주머니 속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수백 년 지식의 지층을 순식간에 관통하는 드릴이자, 잠들어 있던 거인들을 다시 깨우는 주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우리는 AI를 통해 과거의 거인들을 다시 깨우고, 그들의 지혜를 현대에 접목하며, 우리 시대의 새로운 거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단 호기심과 비판적 사고라는 나침반을 들고 있어야 한다.

이런 시대에 과연 암기 천재는 천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 IQ는 또 무슨 의미일까. 나의 GPT와 토론해볼 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권영설 주필 yskwon@kmjournal.net

권영설 칼럼니스트는 한국경제신문 기자, 논설위원, 기조실장 등을 지냈고 이코노믹데일리 편집국장, 미디어펜 사장을 역임한 언론인이다. 형지그룹 기조실장과 형지엘리트 사장 등 기업인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섬유신문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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