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새로운 것이 쏟아지는 즉 창조 혹은 창작이 폭발한 순간은 생각보다 드물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꽃피운 르네상스, 18세기 산업혁명, 20세기 말 인터넷 보급기처럼 기술·문화·사회 시스템이 한순간에 맞물릴 때, 전혀 새로운 창작자 집단이 등장했다.
2025년의 우리는 또 다른 큰 물결 앞에 서 있다. 생성형 AI가 이끄는 ‘AI 르네상스’라 부를 만한 큰 파도다.
르네상스, 새로운 직업의 탄생
르네상스는 흔히 예술과 과학의 시대라 불리지만, 그 이면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 고전 지식의 재발견, 메디치 가문 같은 후원 시스템 등이 있었다. 이 세 요소가 만나 지식의 구조를 흔들고, 창작을 생업으로 삼는 ‘직업 예술가’가 등장했다.
미켈란젤로, 다 빈치, 보티첼리는 모두 기존 권력이나 위계 질서 밖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벌인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시대를 바꾸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고, 바로 그 점에서 르네상스는 창조의 전환기였다.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에서 “중세의 인간은 집단 속의 한 부분으로 자신을 인식했지만, 르네상스의 인간은 하나의 영혼적 개인으로 거듭났다”고 표현했다.
플랫폼과 알고리즘 그리고 AI
2000년대 중반, 창작의 무대는 인터넷으로 넘어갔다. 저스틴 비버는 유튜브에 올린 영상 하나로 대형 기획사 없이 음악 산업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그를 발견한 것은 전문가가 아닌 알고리즘과 대중의 집단지성, 그리고 플랫폼이었다.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플랫폼은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팬 기반의 후원과 콘텐츠 유통이 가능한 새로운 경제 구조가 형성됐다.
이제 창작의 중심은 또 다시 이동하고 있다. 오늘 새로운 창조의 시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거대한 연산 능력을 품은 AI 모델이다. 정확히는 2022년 11월30일 오픈AI가 생성형 AI인 챗GPT를 공개한 이후다.
생성형 AI가 창작의 도구이자 파트너가 되면서, 기존의 예술계나 산업 구조 ‘외부’에 있던 사람들도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샘 올트먼 오픈AI 창업자는 2023년 미 상원 청문회에서 생성형 AI 공개를 ‘인쇄기 순간(printing-press moment)’, 즉 인쇄술 발명에 필적할 전환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숫자로 드러난 창작의 폭발
생성형 AI의 확산은 추상적 열광이 아니다. 2024년 기준, 텍스트-투-이미지(text to image) 모델로 매일 평균 3,400만 장의 그림이 만들어지며 누적 생성량은 150억 장을 넘어섰다. 어도비 파이어플라이(Adobe Firefly)는 출시 두 해가 채 되지 않은 올해 4월, 220억 개 이상의 시각 자산을 생산해 포토샵 30년 역사를 단숨에 추월했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스트리밍 플랫폼 디저(Deezer)도 지난 4월 하루 2만여 곡의 ‘순수 AI 작곡’ 트랙이 업로드돼 전체 신곡의 18 %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뉴욕에서 이달초 열린 2025년 런웨이 AI 영화제(Runway AI Film Festival)에선 2023년 300편이던 출품작이 6,000편으로 늘어 AI 영화 창작의 기세를 증명했다. 출판 시장도 급류를 맞고 있다. 아마존은 킨들을 통해 배포하는 자가 출판권수를 2023년부터 하루 3권으로 제한했을 정도다. 개인들이 AI 소설을 너무 많이 써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가져온 창작의 대폭발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후원 시스템의 재편과 새로운 직업군
르네상스 시기 메디치 가문이 예술의 든든한 후원자였다면, 오늘날 그 자리는 팬 커뮤니티·크라우드 펀딩·NFT가 대신한다.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창작자-경제의 인프라가 되고 있다. 기술이 예술의 질을 자동으로 끌어올린다는 낙관은 경계해야 하지만, 네트워크 기반 후원 구조 덕분에 ‘1인 창작 기업’이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현실이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르네상스를 촉발한 것은 왕이나 길드가 아니라,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쥐고 스스로 이야기를 시작한 개인 창작자였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AI는 작업장이고 화실이자 악기이며 인쇄소다. 저작권과 노동 구조 같은 난제도 함께하지만, 용기와 상상력이 있는 누구에게나 창작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권영설 주필 yskwo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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