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고전 중인 구글 ‘제미나이’, 그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거리감이다
글로벌에선 박빙… 한국에선 KO 패
전 세계 생성형 인공지능(GAI) 시장에서 구글과 오픈AI는 양대 산맥이다. 글로벌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 기준으로 챗GPT는 5억 명, 제미나이는 4억 명에 달한다. 기술 성능이나 이용자 수 모두 박빙이다.
하지만 한국 시장만 놓고 보면, 양상은 정반대다. 2025년 5월 기준 국내 MAU는 챗GPT 1017만 명, 제미나이 5만5000여 명. 무려 180배 격차다.
기술 격차는 크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큰 간극이 벌어진 걸까?
숫자보다 먼 거리: 정서적 체감
올해 구글은 I/O 2025에서 ‘제미나이 2.5 프로’를 공개했다. 이 모델은 1500쪽 분량의 문서를 단숨에 분석하고 복잡한 수학과 코딩 문제를 추론으로 해결하는 ‘딥 씽크(Deep Think)’ 기능을 탑재했다.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생각하는 AI’에 가까운 정교한 시스템이다.
제미나이는 검색, 지도, 유튜브, 문서 등 구글의 다양한 서비스에 깊숙이 통합돼 있다. ‘AI 기능’이 아니라 ‘AI 환경’ 자체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사용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이건 왜 써야 하지?”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기술과 사람 사이에 놓인 정서적 거리를 드러내는 질문이다.
챗GPT가 선택받은 이유: 감정 설계
챗GPT는 단지 똑똑한 챗봇이 아니다. 오픈AI는 ‘공감하는 AI’라는 서사를 만들었다.
GPT-4o 기반의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기는 사용자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챗GPT를 “내 감정을 표현해주는 친구 같은 AI”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단순한 UX가 아니라, AI에 감정을 투사할 수 있는 경험을 설계한 셈이다.
그 결과, 한국은 미국에 이어 챗GPT 유료 구독자 수 2위 국가가 됐다.
구글은 ‘정답’을, 오픈AI는 ‘공감’을 설계했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제미나이는 전문가들에게 최고의 AI로 평가받지만, 일반 사용자에겐 ‘이게 왜 필요한지’가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게 구글 AI라는 인식조차 희박한 경우가 많다.”
오픈AI는 일상 대화라는 맥락 속에 AI를 풀어냈고, 구글은 완성된 기능의 집합으로 정답을 제시해왔다.
이 작은 차이가 결국 AI가 사용자 곁으로 얼마나 들어올 수 있는가, 즉 ‘기술의 서사 설계력’에서 갈림길을 만든 셈이다.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AI, 무엇이 필요한가
구글은 AI를 문서 속에 담았고, 오픈AI는 대화 속에 풀어냈다. 이 작고도 결정적인 차이가 AI가 ‘기술’에서 ‘존재’로 느껴지는지 여부를 가른다. 그리고 이 작은 차이가 한국 시장에서 AI가 받아들여지는 방식에 큰 차이점을 남겼다.
AI는 단지 성능이 좋아졌다고 ‘채택’되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는 기술을 선택할 때 자신의 감정, 습관, 서사와 어울리는 무언가를 찾는다. 제미나이는 지금, 그 선택지 바깥에 서 있다.
한국에서 제미나이가 고전하는 이유는, 기술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기술이 사람 마음에 닿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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