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는 왜 다시 전면에 등장했는가, 기억을 자산화하는 시대의 감정 경제
주말새 '놀면뭐하니'에 박명수가 나온다고 해서 유튜브로 그의 활약을 지켜봤다. 그랬더니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10년전 ‘무한도전’ 해외 극한 알바 편을 다시 보게 됐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인도 뭄바이에서 빨래하고 아프리카 케냐에서 코끼리 먹이를 주던 유재석, 황광희,정형돈, 하하, 박명수, 정준하.
낯선 땅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일터에서 고군분투하던 그들의 모습은 지금봐도 여전히 재밌다. 아니나 다를까 무한도전 유튜브는 지금 핫한 아이돌 사이에서도 여전히 인기 콘텐츠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지난 5월에는 '무한도전' 20주년 기념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복고(Retro)’ 혹은 ‘레트로’라는 이름 아래, 과거의 IP 자산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잔스포츠(JanSport) 백팩을 멘 배두나는 단순한 패셔니스타가 아니라, 한 시대의 상징을 호출한 연출자다. 90년대 캠퍼스, 고등학교 복도, 대학 축제의 사진첩에 있던 그 가방은 현재 다시 힙한 오브제로 변모한다.
그리고 올 여름 영화 '슈퍼맨'도 또 돌아왔다. 이번엔 제임스 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DC 유니버스의 ‘재시작점’을 선언했다. 이번 슈퍼맨은 전통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정체성과 인간성, 다문화 감성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입고 돌아왔다고 한다.
왜일까. 왜 레트로인가. 왜 잔스포츠와 마리떼, 슈퍼맨과 무한도전, 슬램덩크와 아식스, 휠라와 카파, 심지어 아날로그 캠코더까지 모두 돌아오는가.
영화 '슈퍼맨' 예고편 영상=WB
새로운 글로벌 IP를 만들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매스 브랜딩을 하기에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너무 많은 콘텐츠가 있고, 주목은 짧아지고, 기억은 흐릿해진다. 플랫폼이 쪼개지고, 알고리즘은 취향을 잘게 갈라놓는다. 이런 시대에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것’, ‘익숙한 정서로 빠르게 감정을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무기가 된다.
복고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을 설계할 수 있는 검증된 자산이며, 브랜드를 다시 전진시키는 엔진이다. 브랜드는 새로움을 찾기보다, 기억을 재활용한다. 과거의 자산에 오늘의 시선을 입히고, 낡은 것을 멋있게 재조립해 다시 파는 것. IP는 리스크 없는 콘텐츠 투자처이자, 감정 자산의 뱅크다.
그래서 무한도전도 다시 뜨고, 슈퍼맨도 다시 날고, 그 시절의 백팩과 운동화, 캐릭터와 노래들이 돌아온다. 단순히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시대의 감정에 대한 정확한 반응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움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을 통해 살아남으려는 중이다. 레트로는 과거가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가 꺼내 드는 정서의 보험이자 지금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한 가장 감각적인 복습이 되어가고 있다.
신승호 KMJ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