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팬덤의 감정이 만든 한국형 애니메이션
지금의 한국을 보여줄게, 생각 없이 즐겨 –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롤러코스터
처음엔 의심 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라는 타이틀은 지나치게 장르적이고, 너무 노렸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본 후, 나는 마치 에버랜드에서 가장 긴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온 기분이 들었다. ‘뭐야 뻔하면서 좀 긴데 이거, 왜 이리 재밌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단순히 아이돌이 악마를 퇴치한다는 B급 장르물이 아니다. 이건 BTS, 블랙핑크, 뉴진스, 에스파, 아이들, 세븐틴, 엑소, 그리고 수많은 걸그룹·보이그룹 팬들이 무의식 중에 구축해온 ‘한국에 대한 감각적 기억’을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으로 오마주한 작품이다. 강남역 번화가를 배경으로 한 도심 전투, 한옥이 늘어선 골목에서의 숨바꼭질, 아이돌 댄스를 활용한 액션 시퀀스, 그리고 엔딩 크레딧 속 콘서트 장면까지. 한국이라는 나라가 만든 감각적 아카이브가 롤러코스터처럼 관객을 휘몰아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공식예고편=넷플릭스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간단하다. 낮에는 케이팝 아이돌로, 밤에는 악마 사냥꾼으로 활동하는 여성 삼인조가 세상을 구한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지금의 한국’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경쟁과 스케줄, 악플과 가십 속에서도 끝내 팬들 앞에서는 빛나는 존재로 서야만 하는 K팝 아이돌의 ‘듀얼 라이프’. 그리고 글로벌 팬들이 그들의 퍼포먼스를 통해 만나는 한국의 풍경들 – 지하철, 길거리 음식, 올빼미 버스, 떡볶이, 네온사인, 전통과 미래가 뒤섞인 시각적 정서. 이 모든 것이 ‘생각 없이 즐겨’라는 말 안에 담긴 한국 특유의 에너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강남이라는 소비의 공간을 과장과 풍자로 풀어냈다면, BTS의 뮤직비디오는 서울의 밤, 지하철, 학교 운동장, 한강의 일상성을 스타덤과 연결했다. 블랙핑크는 전통과 퓨처리즘이 혼합된 비주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한국’을 보여줬고, 뉴진스는 하이틴 무드 속에 하이패션과 하이테크의 교차점을 만들었다. 팬들은 이 뮤비를 보고 서울에 와서 직접 지하철역 앞에서 사진을 찍고, 카페에서 머물고, 뉴진스 하입보이 댄스를 따라 추며 그 감각을 되새긴다.
이 영화는 그러한 ‘한국을 즐기는 방식’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은 이제 단순한 국가가 아니다. 체험의 집합이고, 콘텐츠 소비자의 욕망이 투영되는 공간이며, 아이돌이라는 신화의 무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 모든 것을 만화적 과장과 장르적 쾌감으로 버무려낸다. 그리고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관광 콘텐츠가 된다. 더불어, 글로벌 팬들이 ‘아는 만큼 더 즐기는 한국’을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한다. ‘한국을 즐기는 법’을 문화 콘텐츠 안에 내장한 셈이다.
결국 이 애니메이션은, BTS가 열어젖힌 세계의 문턱에서 싸이의 유쾌한 광기와 뉴진스의 뉴웨이브가 겹쳐지고, 블랙핑크의 파워가 응축된 하나의 ‘한국적 판타지’다. 단지 외국 자본이 만든 K콘텐츠 카피캣이 아니라, 글로벌 팬덤과 한국 대중문화의 상호작용이 만든 거울 같다. 이 영화를 만든 크리에이터들도 케이팝 팬이었을 것이다. 아니, 팬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로 정서적으로 정밀한 오마주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 영화를 아직 보기 전이라면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자. 놀이공원에서 타기 전, 겁을 먹으면 롤러코스터는 더 무서워진다. 그냥 올라타고, 비명을 지르면서, 때론 웃고 때론 놀라고 하며 내려오면 된다. 그 순간 우리는 그저 ‘지금의 한국’을, 팬으로서 또 여행자로서 체험하게 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말한다. 지금의 한국을 보여줄게, 생각 없이 즐겨. 그리고 그건 어쩌면, 한국이 세계를 홀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
신승호 KMJ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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