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내러티브, 이야기를 사는 자가 결국 세계를 지배한다
몰입을 만들어내는 서사의 힘을 해부합니다
시간을 점유한다는 점에서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경쟁이다. 그러나 돈을 버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유튜브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편의를 제공해서 광고수익을 나누는게 핵심이다. 반면, 넷플릭스는 매력적인 IP를 직접 소유해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제국을 건설하려 한다.
오징어게임이 처음 등장해서 K콘텐츠의 상징으로 세계를 휩쓸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기훈이라는 인물의 결말에 눈물짓던 그때, 정작 그 이야기의 소유권은 한국이 아닌 넷플릭스에 있었다. ‘세계로 간 K콘텐츠’라는 표현이 반복될수록, 어딘가 불편함이 커졌다. 우리가 만든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파생시키고 수익을 거두고 확장하는 권리는 모두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 있다면, 그건 정말 우리 이야기일까?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 쿠팡플레이에 이르기까지, 이제 플랫폼은 콘텐츠를 ‘유통’하는 곳이 아니라 ‘소유’하는 구조로 진화했다. 제작사나 작가는 단지 스토리를 만드는 공급자일 뿐, 실질적 권한은 ‘자본을 투자한 자’에게 귀속된다. 그 결과, 콘텐츠는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질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은 점점 플랫폼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IP 소유권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 구조는 겉보기엔 낯설지 않다. 방송사가 제작비를 투자하고, 작가와 제작사는 기획·집필·제작을 수행하며, IP는 방송사 소유로 귀속되던 시절이 있었다. 넷플릭스는 이 모델을 더 정교하게, 더 완벽하게 구현한 것이다. 글로벌 유통 + 데이터 기반 기획 + Buyout 계약 + 완전한 IP 통제. 넷플릭스는 창작자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든 권리를 확보하고, 파생 상품과 세계관 확장까지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다. 오징어게임은 한국이 만든 콘텐츠지만, ‘넷플릭스가 전 세계에 보급한 콘텐츠’로 남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짜 창작자가 이야기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첫째, 원작 기반 IP의 중요성이다. 웹툰, 웹소설, 소설, 팟캐스트, 유튜브 등 이미 존재하는 1차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기획은 넷플릭스든 방송사든 쉽게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렵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그의 원작 웹툰에 기반했기 때문에, 스핀오프나 굿즈화가 이뤄져도 연 감독의 저작권이 일정 부분 존중된다.
둘째, 공동제작과 협상 구조의 설계다. 최근에는 제작사가 플랫폼과 공동제작 형태로 계약을 맺고, 최소한의 지분이라도 IP에 관여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더 글로리’는 스튜디오드래곤이 지분을 갖고 있어, 이후 리메이크나 2차 사업에 대해 논의권을 확보할 수 있다. 계약서 안에 담긴 한 줄이, 훗날 수백억 원의 권리를 좌우한다.
셋째, 브랜드로서 작가의 위치 정립이다. 이제 창작자는 단순히 스토리텔러가 아니라, IP를 설계하고, 운영하고, 교섭할 줄 아는 브랜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작가의 세계관은 하나의 세계이고, 그 세계에 입장하려는 플랫폼은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야기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그 대가는 단순 제작비가 아니라 공동의 미래여야 한다.
지금 우리는 ‘누가 이야기를 더 잘 쓰는가’보다, ‘누가 이야기의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를 놓고 경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야기를 가진 자가 플랫폼과 협상하고, 세계관을 확장하고, 캐릭터를 파생시키며, 브랜드로 성장하는 구조. 이것이 콘텐츠 비즈니스의 미래다. 플랫폼이 IP를 소유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는 끝나야 한다.
플랫폼이 아무리 거대해도, 이야기의 시작은 언제나 창작자다. 그리고 그 창작자가 자신의 문장을 지키고자 싸우는 순간, 그 이야기는 다시 살아있는 것이 된다.
신승호 KMJ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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