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의 초개인화와 XR의 몰입 경험, 그리고 인간 창의성의 균형

30여 년 전, 워드프로세서와 엑셀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반복적인 문서 작업과 숫자 계산에서 해방되어 시간이 넉넉해질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보고서는 더 길어지고 분석은 더 복잡해졌다. 업무 부담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었다.

이미지 = 구글 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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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생성형 AI 역시 비슷한 약속을 하고 있다. 특히 마케팅 분야에서, AI는 다시 한 번 ‘생산성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 예측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업무의 효율성을 넘어, 마케팅의 본질적인 활동 방식 자체가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마케팅은 오랫동안 ‘운(運)의 영역’, 즉 아이디어 싸움이라고 불려왔다. 창의적 발상과 감성적 스토리텔링이 핵심이었다. 이후 디지털 마케팅이 대두하면서 데이터 분석이 결합되었고, 이제는 생성형 AI가 이 지형을 또 한 번 뒤흔들고 있다. 최근 BCG와 하버드 공동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았다. 최신 AI 도구를 활용한 마케터들은 창의적 업무 수행 능력이 무려 40%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 구상, 카피라이팅, 이미지 제작 등 전통적으로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작업이 AI로 인해 폭발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늘어난 생산성은 마케터들에게 ‘여유’를 가져다줄까? 아쉽게도 전망은 다르다. 마케터들은 오히려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들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초개인화된 콘텐츠를 말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받는 이메일 속 모델이 나와 닮아 있고, 추천 상품은 내 취향과 정확히 일치한다면, 소비자는 ‘나만을 위한 메시지’라는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려가 발생한다. 콘텐츠는 이미 넘쳐나는데 초개인화로 더 많은 메시지가 쏟아진다면 과부하에 걸릴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동질화다. AI가 학습하는 것은 기존 데이터이므로, 브랜드 간 결과물이 서로 비슷비슷해질 위험이 크다. 실제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아이디어의 독창성이 오히려 40% 낮아진다.

이미지=구글 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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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조직의 좌뇌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데이터 과학자와 엔지니어로 구성된 팀을 통해 예측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사내 데이터뿐 아니라 외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데이터셋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마케팅 정밀도를 높여야 한다.

둘째, 조직의 우뇌적 창의성을 보호해야 한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혁신가들을 찾아내어 육성하고, 핵심 아이디어 도출만큼은 인간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AI는 영감을 제공하는 도구일 수 있지만, 브랜드의 고유한 색깔은 인간의 직관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XR(eXtended Reality, 확장현실)의 역할도 주목해야 한다. AI가 콘텐츠의 생산과 개인화를 혁신한다면, XR은 콘텐츠의 경험과 몰입을 혁신한다. 소비자는 단순히 브랜드의 광고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XR 환경 속에서 직접 제품을 체험할 수 있다. AI가 분석한 개인 취향에 맞춰 XR은 ‘내 방 안에 제품이 놓인 듯한’ 현실감 있는 경험을 제공하며, 브랜드 세계관에 소비자를 초대한다. 초개인화와 XR이 결합하면 마케팅은 설득을 넘어 ‘체험 기반의 몰입형 스토리텔링’으로 진화할 수 있다.

결국 마케터의 역할은 메시지를 만드는 사람을 넘어 데이터 기반의 기획자이자 경험 설계자로 확장된다. 데이터 분석과 예측 모델링 능력, 창의적 기획과 스토리텔링 역량, 그리고 XR을 활용한 몰입 경험 설계 능력까지 아우르는 역량이 필요하다.

AI와 XR은 앞으로도 더 정교해지고, 더 생생해질 것이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에 진정한 감정적 연결을 디자인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생성형 AI와 XR 시대, 결국 답은 ‘AI와 함께 진화한 휴먼’에 있다.

금몽전 기자  kmj@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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