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기술 종속과 산업 쇠퇴의 나락으로 빠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번영의 기회를 선도할 것인가.”
2025년 9월 8일,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국가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 출범식에서 던진 이 질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지난 수년간 AI 기술을 둘러싼 국가 간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이제는 정부 차원의 명확한 방향성과 실행력이 요구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부가 이례적으로 대통령 직속 ‘전략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은 건 그만큼 AI가 국운을 좌우할 전략산업이라는 판단에서다.
반도체, 배터리 다음은 AI…정부 전략 ‘AI 3대 강국’ 선언의 맥락
한국 정부의 AI 전략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2019년 문재인 정부가 'AI 국가전략'을 처음 제시한 이후, 윤석열 정부도 초거대 AI 생태계 조성과 컴퓨팅 인프라 확대에 방점을 찍은 바 있다.
하지만 그간 정책은 각 부처 단위로 분산되어 추진됐고, 민간 기업들과의 연결 고리도 느슨했다. ‘누가 컨트롤타워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이 없었다. 이번 이재명 정부의 국가 AI 전략위 출범은 그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이다. 정부가 "이제 AI는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고 선언한 셈이다.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뒷받침”…AI 원팀 코리아 출범
이번 전략위는 총 50명으로 구성되며, 민간 전문가 34명, 정부 부처 장관급 인사 13명, 대통령실 관계자 2명이 참여한다. 각 분과별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재철 AI대학원, 한국AI·SW협회, 녹서포럼 등 다양한 민간 조직이 참여해 산업계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구조를 갖췄다.
정부는 기존의 ‘정부 주도형 산업정책’에서 벗어나, 민간의 창의력과 속도감, 실행력을 앞세우는 ‘민간 주도형 실행전략’을 천명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조율하고, 민간이 사업을 끌고 가는 모델이다.
AI 육성 4대 원칙 발표…접근성과 균형발전, 포용성까지 담았다
이날 출범식에서 공개된 AI 산업 4대 육성 원칙은 AI를 ‘산업’뿐 아니라 ‘사회 시스템’으로 규정한 데 의미가 있다.
접근성 강화 : 모든 국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포용형 AI
민관 원팀 전략 :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인프라와 투자로 뒷받침
AI 친화적 시스템 혁신 : 법과 제도, 공공 시스템의 전면 개편
전국 균형 발전 : 수도권 편중 해소, 지역 기반 AI 거점 육성
이는 AI를 ‘기술’이 아닌 국가 운영 전반을 재편하는 촉매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AI는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닌 지금 당장 설계하고 관리해야 할 인프라이자 제도가 된 것이다.
컴퓨팅이 병목이었다…재추진되는 국가 AI 컴퓨팅센터
한동안 업계가 좌절했던 국가 AI 컴퓨팅센터도 민간 중심 모델로 방향을 틀며 다시 추진된다. 과거 두 차례나 유찰된 이 사업은 지나치게 정부 주도적이었고, 민간 기업에는 리스크만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간 지분을 70% 이상으로 늘리고, 독소조항으로 꼽힌 ‘정부 투자금 매수 의무’도 삭제했다. 2028년까지 GPU 1만5천장, 2030년까지 5만장 확보라는 구체적 수치도 제시됐다. 이는 단순한 인프라 투자가 아니라, 초거대 AI 시대에 필수적인 ‘연산 주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수단이다.
11월 공개될 ‘AI 액션플랜’…12대 전략 분야가 바꿀 산업 지형도
이날 전략위는 1호 안건으로 ‘대한민국 AI 액션플랜’ 추진 방향을 보고했다.
11월 발표 예정인 이 계획은 ▲AI 기술의 자립 ▲산업의 AI 대전환 ▲AI 기반 사회 시스템 정비를 3대 축으로 하고, 12개 전략 분야가 여기에 실린다.
정부는 특히 문화, 국방, 의료, 제조, 콘텐츠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 AI를 결합해 수출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릴 계획이다. 기술 그 자체가 아닌 기술을 산업과 연결시키는 기획 역량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AI 기본법 하위 법령 윤곽…“고영향 AI, 이제는 법으로 규정한다”
AI 산업계의 또 다른 관심사는 2026년 시행 예정인 AI 기본법 하위 법령이다. 정부는 AI 집적단지 지정 기준, 고영향 AI 판별 기준, AI 사업자 책임 범위, 영향 평가 방식 등을 담은 하위 규정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플랫폼 기업과 알고리즘 중심 기업들에게 법적 리스크 관리 체계를 요구하는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AI 기업들이 기술 개발뿐 아니라, 윤리성과 설명 가능성, 공정성까지 사전 설계에 포함해야 하는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AI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3가지
① 인프라 환경이 달라졌다.
GPU 중심의 대규모 AI 컴퓨팅 자원이 민간에게 열리며,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활용 기회가 확대된다.
② 정책 접근 방식이 달라졌다.
기존처럼 부처별 정책을 찾는 방식이 아니라, 전략위원회를 통해 일괄 기획, 일괄 지원, 일괄 점검 체계가 만들어진다.
③ 규제가 달라진다.
단순한 가이드라인을 넘어, ‘고영향 AI’를 법적으로 규정하고 책임을 묻는 시대가 열린다. AI 서비스 기업은 이제 기술력만큼이나 법제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