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AI 학습용 데이터 개방·자율주행 실증 확대… 피지컬 AI·로봇 기업들 ‘규제의 벽’ 넘는다

공공데이터가 AI 혁신의 촉매가 되는 시대를 열겠다고 정부는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공공데이터가 AI 혁신의 촉매가 되는 시대를 열겠다고 정부는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국민 세금으로 만든 데이터라면, 국민 모두가 쓸 수 있어야죠.”

2025년 9월 15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주재한 ‘제1차 핵심 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이처럼 말하며 공공저작물과 산업 데이터를 전면적으로 개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AI·로봇·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 산업에 오랫동안 걸림돌로 작용해 온 저작권과 실증 제한 규제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그간 정부는 ‘공공누리’ 저작물 약 1,180만 건을 AI 학습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까다로운 비식별화 조치와 활용 절차로 인해 기업들이 실제로 활용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이번 회의를 통해 정부는 공공데이터 제공 범위를 넓히고, 이를 결정한 공무원에게 면책 조항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하며, 산업계가 요구해온 규제 혁신을 전면 수용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자율주행차, 이제 ‘도시 단위 실증’ 시대로

자율주행 산업계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지방 중소도시 전체를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하자”는 새로운 제안을 꺼내들었다. 지금까지 자율주행차는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47개 시범지구 안에서만 테스트가 가능했고, 신청 절차도 복잡해 기업들은 실증에만 수개월을 소모하곤 했다.

이에 비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2,000대 이상의 자율주행차가 실제 도로를 주행하고 있으며, 허가·신고 체계가 민간 중심으로 유연하게 운영되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유민상 CSO는 “지구 단위 실증은 과도한 제약”이라며 “전국 단위 실증을 허용해야 기술도 발전하고 경쟁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도시 단위 샌드박스 제안은 지방 도시에 AI·자율주행 산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부여하며, 동시에 지역 경제 활성화까지 도모하는 ‘규제혁신+균형발전’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봇산업의 실증화, 드디어 가속 붙나

AI 못지않게 그간 규제에 발이 묶여 있던 산업이 있다면 바로 피지컬 AI 기반 로봇산업이다.

예컨대 주차로봇은 설치 장소에 대한 제한, 관리인의 상주 의무, 주차 구획의 물리적 크기 제한 등으로 인해 상용화가 불가능했고, 건설로봇은 업종 등록 시 필수 인력 확보를 요구하는 조건으로 인해 소규모 기업의 진입 장벽이 매우 높았다.

정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이러한 구시대적 규제를 일괄 정비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피지컬 AI 기술이 결합된 서비스로봇과 자율 이동로봇(AMR)의 경우, 산업 현장 내 다양한 공간에서 실증할 수 있도록 허용 범위를 대폭 넓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예고됐다.

기술기업들, “이제는 테스트가 아니라 상용화로 간다”

벤처기업협회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거미줄 규제’를 걷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며 “이번 결정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AI·로봇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AI 업계 또한 반색했다. 한 AI 스타트업 CTO는 “AI는 결국 데이터, 인재, 규제 유연성이 좌우한다”며 “정부가 데이터 개방과 지역 실증을 묶어서 실행하면, 국내에서도 미국 오픈AI나 유럽의 로봇 테크 기업처럼 스케일업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개혁, 단순한 행정이 아닌 산업 전략으로

이날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규제 샌드박스를 ‘레벨업’하여 메가특구로 전환하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범정부 규제개혁위원회 개편안도 발표했다. 민간위원 수도 2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는 단발성 규제 완화가 아니라, 정부 전체가 지속적인 기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전략적 리더십을 갖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특히 기술 기업 입장에서 이는 연속성과 신뢰성을 갖는 정책 기반이 마련됐음을 의미한다.

“데이터 확보와 실증이 혁신의 출발점”

AI나 로봇 기술은 개발보다 데이터 수집과 현장 실증이 더 큰 비용과 시간이 드는 산업이다. 그동안은 ‘데이터가 없어 학습이 안 되고’, ‘실증 못해 출시가 지연되는’ 딜레마 구조가 반복돼왔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공공 데이터 개방 ▲저작권 법적 책임 해소 ▲도시 단위 실증 허용 ▲구형 규제 정비 등 네 축이 동시에 진행되며, 산업의 생태계 전체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피지컬 AI, 로봇, 자율주행 등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현장을 뛰어야 하는 기술들이다.

데이터를 풀고, 실증의 문을 열어준다면, “테스트베드에 갇힌 기술”에서 “길 위의 기술”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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