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주면 지분도 받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보조금 정책의 판을 다시 짜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지분 10%를 무상 확보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선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보조금 지급을 넘어, 전략 산업에 대한 직접 통제권을 확보하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다.
트럼프의 ‘반도체 내셔널리즘’, 지분 확보로 노선 전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SNS 플랫폼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 정부가 이제 인텔 지분 10%를 완전히 소유하고 통제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를 직접 인텔 CEO 립부 탄과 협상했다고 밝히며,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110억 달러(약 15조 원) 가치의 지분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결정은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 따른 보조금을 수령한 기업들이 단순 수혜자가 아닌, 공적 통제 대상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은 돈을 그냥 줬고, 나는 지분을 원한다”고 말하며 정책 기조 변화를 공식화했다.
TSMC·마이크론은 ‘예외’…추가 투자로 면제받은 배경은?
흥미로운 점은 TSMC와 마이크론은 지분 확보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두 기업은 트럼프 행정부의 지분 확보 기조에서 "현재 검토 대상이 아니다"라는 확인을 받았다. 이는 이들 기업이 이미 미국 내에 공격적인 추가 투자를 약속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TSMC는 지난 3월, 백악관 방문 후 1000억 달러(약 146조 원) 규모의 추가 미국 투자 계획을 공식화했고, 마이크론도 기존 투자 계획을 상향 조정해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이를 “상호 이익에 기반한 파트너십”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예외 아니다? 트럼프式 압박 본격화 조짐
하지만 삼성전자는 다르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분 확보 방침을 공식화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미국 내 추가 투자 약속을 아직 명확히 내놓지 않았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의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삼성은 2023년 이후 텍사스 신규 팹 건설 등 일부 투자 계획을 진행 중이지만, TSMC 수준의 대규모 확대 공언은 없는 상태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에 대해 “보조금 대가로 지분 일부를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향후 보조금 협상력, 미국 시장 내 브랜드 가치, 경영 주도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 AI·반도체 업계가 주목해야 할 3가지 변화
‘무상 지원 → 경영 참여’ 구조로의 전환
미국은 보조금 정책을 통해 단순한 산업 유치가 아니라, 기업 경영권의 일부를 간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TSMC 모델, 투자 확대가 리스크를 줄인다
공격적 투자와 기술 이전 약속은 지분 압박을 피하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이는 삼성전자 등에도 현실적인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AI 반도체 주도권, 이제는 정치 문제
미국 정부의 직접 개입은 향후 AI 반도체 칩 설계, 제조, 수급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술 경쟁이 아니라 국가 간 ‘자산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돈 주면 지분’ 시대…삼성·SK하이닉스의 다음 수는?
이번 인텔 지분 확보는 미국이 전략 산업을 국가 소유화하는 첫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명확히 ‘돈만 주는 시대는 끝났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글로벌 반도체 리더들은 지분 참여 압박, 기술 이전 요구, 투자 확대 의무라는 삼중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새 규칙에 맞춰 새로운 투자-협상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전략적 동맹’이라는 말만으로는 기술 주권과 기업 독립성을 지킬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