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핑계를 대는 사람이었다. 스물다섯에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지금까지, 데뷔가 무너질 때마다 그럴듯한 이유를 꺼냈다. 내가 연극영화과를 나오지 않아서, 코로나 때문에 시장이 얼어붙어서, 무능한 감독들이 은퇴를 안 해서... 심지어 늘 나를 응원해 주는 아내에게는 “당신이 날 너무 칭찬해서, 신이 내게 관심을 안 주는 것 같다”는 사이비 같은 궤변까지 늘어놓았다.

그러다 가끔 나의 사기꾼 같은 핑계가 통하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이렇게 말했다. “기회를 줘라. 기회만 오면 보여줄 수 있다. 세상을 놀라게 할 자신이 있다.” 이건 일종의 마법의 주문이었다. 세상이 쉽게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주문처럼, 부적처럼.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기회가 왔다. 내가 변명에 눈이 멀어 있는 사이, AI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왔다. 수십억의 제작비도, 말 안 듣는 스태프도, 눈치 볼 투자자도 필요 없다. 노트북과 시간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장면을 만들 수 있다니. 이건 꿈에 그리던 ‘기회’의 다른 이름이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독학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프롬프트를 작성하며 이미지를 생성하고 영상으로 변환했다. 그러다 AI가 엉뚱한 이미지를 내놓으면 모니터를 붙잡고 화를 냈다. “미국 변호사 시험도 붙는다면서 이 간단한 장면도 못 알아 듣냐?” 소리를 쳤다. AI는 연신 잘못했다는 얘기만 꺼내고 다시 한 번 자세히 말해주면 본인이 수정하겠다는 형식적인 답변을 했다. 근데 그 답변이 나를 때렸다. 

 

'도대체 내가 정확히 원하는 게 뭐지?'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정확히 모르면서,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거지? 그날 처음으로 문제의 위치를 정확히 봤다. AI가 아니라 ‘나’였다. 인물이 무엇을 원하는지, 장면의 감정선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에 닿아야 하는지—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런 기본적인 질문을 앞에 두고 나는 늘 “환경”을 핑계 삼아 도망치는 비겁한 인간이었다.

이제 더는 도망칠 수 없었다. AI는 그 비켜섬을 허락하지 않았다. AI가 노동을 덜어주지만, 결심은 덜어주지 않고. 장면을 합성하지만, 의미는 합성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AI와의 대화를 멈추고 볼펜과 종이를 꺼내 또박 또박 한 글자씩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동안 복잡한 과정 속에 숨어 피했던 질문들에 답을 하고 나니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이제 남는 것은 내 의도와 판단뿐이었다.

한밤의 AI와의 복장 터지는 대화 끝에 얻은 깨달음으로 만든 영화는 KMJ 주관 2025 GMAFF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인기상을 안겨주었다. 여전히 나는 무명 영화감독이지만 이제 더는 “기회를 달라”는 주문을 외치지 않는다. 기회는 이미 여기 와 있고, 남은 건 내가 어떤 의도로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일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한 줄을 쓴다. 내일의 프롬프트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핑계 대신 의도, 변명 대신 장면.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을 내 이름으로 감당하기 위해.

주재훈 칼럼니스트  woqkd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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