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 CEO의 방문 경로로 본, 스타게이트 AI칩·데이터센터 글로벌 공급망 판도

샘 올트먼 CEO가 10월 1일 한국을 찾기 전, 대만 폭스콘과 TSMC를 먼저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는 이를 두고 칩·패키징·서버라는 공급망의 가장 큰 제약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뒤, 한국에서 메모리와 데이터센터를 결속하는 치밀한 시나리오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챗GPT 개발업체인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1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오찬 회동을 위해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허황된 구상이 현실이 되기까지

2024년, 올트먼은 TSMC를 찾아가 7조 달러 규모의 반도체 투자를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곧바로 “비현실적”이라는 냉소가 쏟아졌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조차 선뜻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으니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올트먼은 비웃음을 감수하면서도 판을 키웠다. 엔비디아 칩만으로는 초거대 AI를 유지할 수 없다는 확신, 그리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내가 간다’는 집념이 그를 움직였다. 그렇게 세상에 공개된 프로젝트가 바로 스타게이트(Stargate)다. 5,000억 달러(약 700조 원) 규모로 조정되었지만, 자본과 기술이 붙자 허황된 구상은 서서히 현실의 윤곽을 띠기 시작했다.

오하이오에서 시작된 글로벌 판 바꾸기

스타게이트의 실체가 뚜렷해진 무대는 미국 오하이오였다. 폭스콘이 현지 설비를 전환해 AI 서버 생산에 뛰어들고,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대규모 투자와 데이터센터 계획을 동시에 얹었다.

여전히 “과연 굴러갈까”라는 회의론이 남아 있었지만, 오픈AI는 구글 출신 엔지니어들을 대거 영입해 자체 칩 개발팀을 꾸렸고, 2026년 TSMC 3나노 공정 양산을 목표로 속도를 높였다. 오라클까지 합류하며 칩·서버·데이터센터를 아우르는 글로벌 공급망의 그림이 완성되자, 스타게이트는 더 이상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칩과 서버, 대만에서 먼저 잠근 이유

9월 30일, 올트먼은 다시 대만을 찾았다. 이번 방문은 조용했다. 기자회견도, 보도자료도 없었다.

그가 향한 곳은 단 두 곳, TSMC와 폭스콘이었다. TSMC에서는 자체 AI칩 양산을 위한 파운드리 생산 슬롯과 CoWoS(2.5D 첨단 패키징) 용량을 협상했고, 폭스콘과는 오라클·소프트뱅크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AI 서버의 대규모 납기를 조율했다.

이 순서는 의미심장하다. 한국에서 삼성과 하이닉스를 만나기 전, 그는 칩·패키징·서버라는 핵심 관문을 먼저 선점했다. 메모리와 데이터센터는 협상 여지가 남아 있지만, TSMC의 파운드리·패키징 라인과 폭스콘의 서버 생산능력은 한 번 놓치면 되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확인된 한국의 존재감

대만 일정을 마친 올트먼은 곧장 서울로 향했다. 10월 1일과 2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오픈AI와 협력 의향서를 체결했다. 업계에서는 “HBM3E, 나아가 HBM4까지 한국이 주도적으로 공급할 것”이라는 기대가 터져 나왔다.

월 웨이퍼 90만 장이라는 수요 전망치는 과장된 수치일 수 있지만, 오픈AI가 장기공급계약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신호다. 동시에 한국 내 20MW급 데이터센터 착공 논의까지 흘러나오며, “한국이 스타게이트의 메모리와 인프라 허브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패키징 공장에 드리운 불안한 그림자

하지만 변수도 존재한다. TSMC가 대만 자이에 건설 중인 첨단 패키징 공장(AP7)은 올해 들어 연이어 안전사고를 겪었다.

고압 감전 사고로 외국인 노동자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등 공사 지연 우려가 제기됐고, 장비 반입이 늦어지면 패키징 완제품 일정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AP7 리스크가 현실화된다면 한국 데이터센터의 본격 가동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올트먼의 ‘대만 먼저’ 방문은 단순한 의전이 아니라 이런 리스크를 미리 줄이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HBM·패키징, 한국에 던져진 시험대

이제 공은 한국으로 넘어왔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HBM 수율·발열·테스트 신뢰성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정부와 산업계 역시 국내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증설, 냉각수 확보, 부지 인허가 병목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 동시에 대만 패키징 리스크에 대비해 국내 고대역 패키징 역량을 강화하고, 듀얼소싱 체제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

오픈AI의 ‘칩-서버-메모리-센터’ 순서에서 한국은 두 번째 막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칩에서 데이터센터까지, 공급망의 물리학

올트먼의 동선은 우연이 아니었다. 칩과 패키징을 먼저 잡고, 이어 서버를 확보한 뒤, 한국에서 메모리와 데이터센터를 묶는 순서. 이는 곧 AI 공급망이 작동하는 원리이자 글로벌 기술 패권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2026년 자체 칩이 본격 양산에 들어서는 순간, 오픈AI는 엔비디아 의존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기회를 현실로 만들 수 있을지는, 지금부터 얼마나 빨리 실행력을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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