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인가 아이인가: 양자택일의 시대를 끝내야 할 때

『알고리즘의 아이들: 청소년, 플랫폼, 국가의 새로운 전쟁』

 

① 16세 금지의 시대: 국가가 SNS를 다시 통제하기 시작했다

② 인스타는 비교, 게임은 보상: 한국이 놓치고 있는 진짜 위험

③ 인터넷·게임 산업 성장과 청소년 보호를 함께 달성하는 법

양자택일의 프레임을 벗어나야 비로소 해답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 월드 챔피언 T1이 사상 처음으로 LoL 월드 챔피언십(월즈·롤드컵)에서 쓰리핏(3-peat·3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사진=연합뉴스) / 월드 챔피언 T1이 사상 처음으로 LoL 월드 챔피언십(월즈·롤드컵)에서 쓰리핏(3-peat·3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한국은 인터넷 산업과 게임 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지만, 그 성장의 그림자에는 늘 “청소년 보호”라는 숙제가 붙어 있다. 산업계는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하고, 학부모·교육계는 청소년의 정신건강과 디지털 중독을 우려한다. 문제는 이 논쟁이 20년째 ‘규제 vs 성장’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이 구도가 지속되는 한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산업을 억누르는 규제는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과도한 시장 자유는 청소년 보호의 공백을 만든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것인가”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그 작업을 시작했다.

첫 번째 관점은 국가가 ‘규제 기관’에서 ‘설계 기관’으로 역할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코엑스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 행사 현장.  사진=KMJ
코엑스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 행사 현장.  사진=KMJ

산업을 누르는 방식의 규제는 오래가지 못한다.  대신 호주·유럽의 사례처럼 명확한 안전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충족시키는 기업에게 보상과 지원을 제공하는 구조를 만들면 산업과 청소년 보호가 동시에 작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 기업이 청소년 사용 패턴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알고리즘의 문제점을 개선하면 규제 완화나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키면 불이익이 없다”를 넘어 “지키면 이익이 있다”로 바꾸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산업 규제를 ‘시간 규제’에서 ‘구조 규제’로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셧다운제처럼 “접속 시간 조절”에 집착해왔다. 하지만 시간 조절은 부모의 휴대폰만 바꾸면 무력화되고, 청소년의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진짜 위험은 이용 시간보다 알고리즘이 만드는 행동 패턴과 정서 패턴에 있다. SNS든 게임이든 청소년에게 위험한 것은 동일하다. 비교, 경쟁, 즉각 보상, 사회적 압력. 이 위험 요소를 줄이는 가이드라인을 산업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유럽의 ‘기본값 최소 트래킹(Default-Min)’ 모델은 좋은 사례다. 기본 설정을 안전 모드로 둔 뒤, 성인은 선택적으로 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세 번째 해법은 교육의 패러다임 변화다.

청소년 디지털 중독 문제는 더 이상 가정과 학교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이미 온라인이 현실과 같은 무게를 가진다. 그렇다면 “사용을 줄여라”라는 금지 중심의 교육은 효과가 없다. 대신 ‘디지털 리터러시’의 구체적 실행이 필요하다. 알고리즘이 어떻게 선택을 왜곡하는지, SNS 속 정보가 어떻게 가공되는지, 게임 보상 구조가 어떤 심리를 자극하는지 학생 스스로 이해하게 하는 교육이다. 아이들을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능동적인 사용자로 전환해야 산업과 보호가 동시에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기술 기업과 가족·교육계의 대립으로 보지 말고 책임 구조의 재배치 문제로 봐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은 거의 모든 책임을 부모와 학생에게 떠넘겼다. 산업은 수익을 얻고, 국가는 관찰만 하고, 가정은 부담을 짊어진다. 이런 구조는 지속 불가능하다. 국가가 기준을 만들고, 산업이 기술을 제공하며, 학교가 교육을 수행하고, 부모는 감독 역할을 보조하는 분담형 생태계가 필요하다. 즉, 청소년 보호는 한 주체가 떠안을 문제가 아니라, 공동의 사회적 인프라다.

산업과 보호는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청소년이 건강하게 자란 사회는 장기적으로 더 강한 디지털 산업을 만든다. 반대로 산업만 앞세우면 청소년은 소모되고, 산업도 결국 신뢰를 잃는다. 우리는 오랫동안 ‘선택’을 고민해왔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설계의 전환이다. 산업을 키우면서 아이들을 지키는 국가-그 균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앞으로 10년 한국 디지털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금몽전 기자 kmj@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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