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프라 사업 두 번의 공모 끝에 결국 ‘제로 입찰’로 좌초
정부의 야심찬 AI 인프라 사업이 두 번의 공모 끝에 결국 ‘제로 입찰’로 좌초됐다. 문제는 정권 교체나 사업 조건만이 아니었다. 한국 AI 산업 구조의 ‘허상’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단독수주 기회에도 ‘텅 빈 응찰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3일, 2차 공모까지 끝낸 ‘국가 AI 컴퓨팅 센터’ 사업이 최종 유찰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초유의 사태다. 1차 공모 당시 복수 경쟁을 기대했던 정부는 2차에서는 단독 입찰도 가능하도록 조건을 완화했지만, 결국 참여한 기업 컨소시엄은 한 곳도 없었다.
이로써 최대 2조5000억 원 규모의 국가 AI 인프라 사업은 백지 상태로 돌아가게 됐다. 2023년 기획부터 논의되어 온 사업이 2025년 중반에 이르러 ‘사실상 백지화’된 것이다.
민간이 응찰 꺼린 3가지 구조적 문제
업계가 지적한 주요 문제는 세 가지다.
1. 수익 구조의 불확실성
SPC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되, 민간이 실질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전무했다. 고정 수요 보장이 없고, 고가의 GPU 인프라 유지비를 민간이 떠안아야 하는 부담은 막대하다.
2. 사업 주도권의 비대칭
정부가 지분 51%를 보유한 구조는 ‘공공주도’ 명분에 초점을 맞췄지만, 실상은 민간이 투자하고 정부가 통제하는 역설적인 구도가 됐다. 특히 바이백 조항은 민간 입장에서 ‘리스크만 있는 구조’로 평가됐다.
3. 엔비디아 의존과 생태계 불균형
해당 사업은 사실상 엔비디아 GPU에 기반한 단일 생태계로 설계됐다. 국내 NPU(Neural Processing Unit) 기술이나 대안형 AI 반도체는 배제된 채 글로벌 특정 기업에 기술이 종속되는 구조라는 비판이 컸다.
정책과 기술 사이의 단절 문제 드러나
정부는 AI 정책을 ‘인프라 중심’에서 출발했지만, 글로벌 흐름은 이미 ‘버티컬 AI’ 중심으로 전환 중이다. 미국, 유럽, 중국 등은 대규모 GPU 구축을 자국 자본으로 밀어붙이거나, 반도체부터 서비스까지 수직계열화한 기업이 주도하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민간이 돈을 대고, 공공이 방향을 잡는” 애매한 구조로 출발해 결국 아무도 뛰어들지 않았다.
또한, 현재 국내 기업들은 자체적인 LLM 개발이나 AI SaaS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정 지역에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해 타 기업에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는 B2B모델은 이미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리스크 높은’ 투자로 간주된다.
GPU는 오는데, 센터는 없는 상황
흥미로운 점은 정부가 이미 1만 장의 GPU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를 수용할 데이터센터 인프라는 확보되지 않았다. 사업 주체도 없고, 클라우드 파트너사도 ‘추후 별도 선정’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재정당국 및 관계부처와 함께 사업 재설계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AI 정책에 대한 민간의 신뢰가 한 번 깨진 이상 이를 복원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시 짜야 할 한국의 AI 전략
‘국가 AI 컴퓨팅 센터’ 사업 유찰은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다. 한국 AI 생태계의 민낯을 보여준 구조적 신호다. 정책이 기술을 앞서지 못했고, 정부와 민간의 전략이 괴리됐으며, 글로벌 흐름과 동떨어진 낡은 프레임이 드러났다.
이제는 ‘GPU 몇 장 들여올지’보다 ‘한국 AI 생태계가 무엇을 지향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권 차원의 단기성과가 아닌, 지속가능한 AI 전략의 전환이 요구된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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