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예매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몰입형 기술
공연 좌석을 미리 체험하며 고르는 시대
공연을 예매할 때 가장 답답한 순간은 결제 버튼을 누르기 직전이다. 수십만 원짜리 뮤지컬 VIP석을 선택했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무대 일부가 가려져 있거나, 콘서트장에서 인기 있는 구역이라던 좌석이 생각보다 너무 멀리 느껴져 실망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화면 속 좌석 배치도만으로는 시야 각도, 무대와의 거리, 조명 효과, 심지어는 앞사람의 체격에 따른 가림 현상까지 전혀 가늠하기 어렵다. ‘좋은 자리’를 고르고 싶었지만 결국 ‘운’에 기대야 하는 불편한 구조였던 셈이다.
이런 불편을 기술이 바꾸기 시작했다. 최근 공연업계에서 등장한 새로운 흐름은 XR(확장현실) 기반의 ‘보이는 티켓예매’ 시스템이다. 단순한 평면 좌석 배치도를 넘어, 실제 공연장의 특정 좌석에 앉았을 때의 시야를 미리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다.
예매자는 모바일 앱이나 웹을 통해 자신이 선택한 좌석에서 무대가 어떻게 보이는지 XR 콘텐츠로 확인한 뒤 결정을 내린다. 마치 공연장에 직접 가서 ‘답사’를 마친 뒤 티켓을 고르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단순히 관객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수준을 넘어선다.
첫째, 공연장의 불만족 환불 요청이나 후기 불만을 줄일 수 있다. 둘째, 공연장 운영자는 관객의 만족도를 높여 재구매율을 높이고, 객석의 ‘죽은 자리’까지 채울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스포츠 경기장은 3D 뷰어를 통해 좌석에서의 시야를 미리 제공한 결과, ‘비인기 좌석’의 판매율이 눈에 띄게 올랐다는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효과는 소비자 심리학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특히 경험 소비(experience economy)에서는 ‘내가 산 경험이 얼마나 만족스러울지’라는 불확실성이 구매를 망설이게 만든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의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는 동일한 가격이라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때 훨씬 더 긍정적으로 지불 의사를 보인다. XR을 활용한 좌석 미리보기는 바로 이 ‘불확실성 제거’ 기능을 수행한다. 좌석 선택의 결과를 가상으로 경험하게 해줌으로써, 소비자는 안심하고 결제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이 서비스가 공연업계를 넘어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풍경이 뛰어난 교외카페에서 자리마다 창문너머의 경치를 XR로 미리 확인할 수 있다면 자리별 가격을 다르게 책정할 수도 있다.
호텔 예약에서도 ‘객실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뷰’를 미리 체험할 수 있다면 프리미엄 객실의 부가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 실제로 관광·호텔 산업에서는 이미 ‘360도 뷰 VR 체험’을 활용한 예약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공연업계의 시도가 다른 산업으로 번져갈 수 있는 이유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은 ‘메타버스 기술의 효용성’이다. 그동안 메타버스는 화려한 비전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게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산업에 뿌리내리는 방식은 언제나 같다. 거대한 담론이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생활 속의 구체적인 불편을 해결할 때 진짜 효용성이 증명된다.
‘보이는 티켓예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관객의 좌석 불안이라는 일상적 문제를 XR이 해결해주면서, 기술이 공연 산업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몰입형 기술은 이렇게 작동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관객의 불편을 줄이고, 공연장의 수익을 높이며, 나아가 다른 산업으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이제 공연 예매는 단순히 티켓을 사는 과정이 아니라, ‘경험을 선택하는 과정’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에는 XR이 있다.
감문전 기자 art@kmjourn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