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FR(고프레임) 영화의 역설

영화계는 오랫동안 초당 24프레임이라는 전통적 규칙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고 프레임률(High Frame Rate, HFR) 기술이 등장하며 이 오랜 관습이 흔들렸다. (HFR: 영화를 초당 48프레임 혹은 그 이상으로 부드럽고 선명한 영상을 구현하는 기술)

이에 대해, HFR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는 새로운 기술이라는 주장과, 관객에게 '어색함'을 주는 기술적 과시라는 비판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HFR이 영화적 경험을 어떻게 재정의하는지, 그리고 왜 누군가에게는 실패였고, 누군가에게는 성공이었는지 분석한다.

잠깐 상식: 왜 영화는 24프레임일까?

영화가 초당 24프레임으로 제작되는 것은 기술/경제적인 요인이 크다.

유성 영화 시대로 접어들며 소리의 안정적인 녹음을 위해선 더 빠른 속도가 필요했다. 
이때,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느끼는 최소 프레임이 24프레임이었고,
필름 사용량을 고려했을 때에도 가장 경제적인 선택이었다. 

이후 100년 가까이 영화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특유의 부드러움과 '영화같은(Cinematic) 질감'으로 인식되었다.

피터 잭슨의 '호빗', 왜 실패했는가

피터 잭슨 감독은 '호빗' 시리즈에서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HFR 기술을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그는 이를 통해 영상의 선명도를 높이고 관객을 영화 속 세계로 더 깊이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많은 관객은 영화가 마치 'TV 드라마'나 '홈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48프레임의 과도한 부드러움은 이전 '반지의 제왕'에서 보여준 특유의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질감을 파괴하고,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역설적 효과를 낳았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어떻게 성공했는가

반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바타: 물의 길'에서 HFR 기술을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모든 장면을 48프레임으로 통일한 '호빗'과 달리, HFR을 특정 장면에만 선택적으로 사용했다. 특히 수중 장면이나 빠른 액션 시퀀스에서는 48프레임으로 촬영해 부드러운 움직임과 압도적 현실감을 살렸고, 대화 장면에서는 24프레임으로 돌아와 영화적 질감을 유지했다.

[사진]  20세기 스튜디오 '아바타: 물의 길'
[사진]  20세기 스튜디오 '아바타: 물의 길'

이처럼 카메론은 HFR을 기술적 과시가 아닌, 서사를 보완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이는 관객이 HFR 기술에 대한 거부감 없이 영화적 경험을 온전히 즐기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예술은 본래 연구로 탄생했다

Edward Muybridge - 달리는 말
Edward Muybridge - 달리는 말

영화는 움직이는 대상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한 과학적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이처럼 영화의 역사는 예술 작업과 기술 탐구의 공존이었다. 오늘날 목격하는 AI, 버추얼 프로덕션, HFR 같은 새로운 기술들은 이 오랜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기술은 단순 영상을 더욱 화려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다. 예술가들이 이야기를 전달하고, 감정을 탐구하며, 현실을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연구 장비다. 영화의 미래는 기술 진보를 통해 예술 비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답으로 채워질 것이다.

선종호 칼럼니스트 pigbot987@gmail.com

저작권자 © KMJ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