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가 공세 뒤에는 AI가 있다, 한국 시장의 기회와 위기
중국 최대 쇼핑 축제 ‘광군제(光棍節, 11.11)’가 다가오고 있다. 알리바바가 2009년 처음 시작한 이 행사는 이제 전 세계 최대 이커머스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하루 매출이 수백조 원에 달하는 거대한 판에서 중국 소비자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전체가 흔들린다. 올해 역시 중국발 초저가 공세와 AI 기반 상거래 혁신이 결합해, 이커머스 전선에 새로운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가격 전쟁의 최전선, 중국발 초저가 공세
광군제의 본질은 여전히 ‘가격 전쟁’이다. 알리바바, 징둥, 핀둬둬 등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은 파격적인 할인과 쿠폰, 실시간 가격 경쟁으로 소비자를 끌어모은다. 특히 올해는 경기 둔화와 소비 위축을 만회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공격적인 할인 전략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제조업체와 직결된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초저가 상품이 글로벌 시장에 쏟아지면, 한국 이커머스 기업과 제조업체에도 직접적인 압박이 된다.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리익스프레스 직구’가 일상화되고 있다. 배송 기간 단축, 무료 반품 정책 등으로 장벽이 낮아진 상황에서, 광군제는 그 흐름을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된다. 한국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AI 쇼핑 어시스턴트, 초대형 이벤트의 숨은 조력자
올해 광군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AI 쇼핑 어시스턴트의 활용이다. 알리바바는 AI 챗봇을 통해 수억 건의 소비자 문의를 자동으로 처리한다. 제품 정보 제공, 교환·반품 안내, 실시간 추천까지 AI가 대신한다. 소비자들은 ‘사람이 응대하는 듯한 대화’를 통해 원하는 상품을 찾고, 이는 구매 전환율로 직결된다.
틱톡커머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AI 알고리즘이 개별 사용자의 시청 습관과 구매 패턴을 분석해, 숏폼 영상 안에 최적의 상품을 배치한다. 소비자가 영상을 보는 순간 AI는 ‘이 사람은 지금 구매 확률이 높다’고 판단해 즉각 쿠폰을 노출하거나 결제 버튼을 띄운다. 쇼핑 경험이 콘텐츠 소비와 실시간으로 융합되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역직구 기회와 과제
한국 기업들에게 광군제는 위기이자 기회다. 위기인 이유는 중국발 초저가 공세가 국내 시장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회인 이유는 ‘역직구(逆直購)’다. K-뷰티, K-패션, K-콘텐츠 굿즈는 여전히 중국 소비자들에게 높은 수요를 가진다. 문제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면서도 브랜드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AI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 브랜드들이 중국 플랫폼에 입점할 때, AI 번역·리뷰 분석·광고 타게팅을 활용하면 현지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힐 수 있다. 예컨대 제품 후기를 AI로 분석해 중국 소비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를 추출하고, 그에 맞춘 광고 문구를 자동 생성하는 식이다. 이는 단순히 판매 채널을 확장하는 차원을 넘어, 데이터 기반 맞춤형 마케팅을 가능하게 한다.
산업 현장 관점: 가격에서 데이터로
광군제는 겉으로는 가격 전쟁 같지만, 실제로는 데이터 전쟁이다. 중국 플랫폼은 수억 명의 실시간 구매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가격을 조정하고, 물류를 재배치하며, 콘텐츠와 쇼핑을 통합한다. 한국 기업들이 이 판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저가 공세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 AI 기반 데이터 활용 역량을 키워야 한다.
예를 들어, 광군제 기간 한국 이커머스 기업이 중국발 트래픽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인기 상품군을 파악한다면, 다음 세일 시즌에 전략적 대비가 가능하다. 또 물류 측면에서는 AI를 활용해 ‘배송 지연 가능성’을 사전 예측하고, 대체 물류망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결국 경쟁의 본질은 가격이 아니라 데이터를 누가 더 똑똑하게 활용하는가다.
연말 쇼핑 시즌으로 이어지는 전쟁
광군제가 끝나면 곧바로 블랙프라이데이가 기다린다. 광군제에서 이미 시험된 AI 기반 전략은 블랙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이어질 것이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연말까지 이어지는 글로벌 쇼핑 전쟁의 ‘전초전’으로 광군제를 활용해야 한다.
중국발 초저가 공세를 위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브랜드 가치와 소비자 경험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I 없는 대응은 패배를 의미한다. 광군제는 그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무대다.
금몽전 기자 kmj@kmjourn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