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AI 배우, 할리우드 무대에 등장하다
지난 9월, 취리히 영화제 산업 행사에서 공개된 인공지능(AI) 여배우 ‘틸리 노우드’는 영화계를 단숨에 흔들었다. 영국 제작사 파티클6(Particle6)와 AI 탤런트 스튜디오 ‘시코이아(Xicoia)’가 선보인 이 합성 배우는 곧 에이전시와 정식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세계 최초의 ‘AI 전속 배우’ 탄생이 가시화됐다.
하지만 “새로운 예술 실험”이라는 제작사의 설명과 달리, 할리우드 내부에서는 곧바로 반발이 터져 나왔다.
“배우가 아니다”…할리우드의 거센 반격
논란의 핵심은 ‘AI 배우는 진짜 배우인가’라는 질문이다. 영화 스크림의 주연 멜리사 바레라는 “정말 역겹다”며 에이전시 보이콧을 촉구했고, 배우 키어시 클레몬스와 마라 윌슨 역시 “수백 명 여성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노조 SAG-AFTRA도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 “AI 캐릭터는 수많은 배우의 연기를 무단 학습한 결과물일 뿐, 삶의 경험과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며 “인간 배우의 생계를 위협하는 시도”라고 못 박았다.
일자리 위협, 효율성의 그늘
AI 배우는 지치지 않고, 늙지 않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제작사에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은 곧바로 배우들의 임금·복지·잔여수익 구조를 우회하는 통로가 된다. 할리우드 파업 이후 ‘합성 퍼포머’ 조항이 핵심 이슈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엑스트라, 신인 배우 시장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얼굴과 목소리, 누구의 권리인가
이번 사태에서 가장 강력한 반발은 ‘얼굴 짜깁기’ 문제였다. 노우드의 외모와 동작이 수천 명의 배우 데이터를 합성해 탄생했다는 점에서, 퍼블리시티권(초상·음성·연기 권리)과 저작권 침해 문제가 불거졌다.
“내 얼굴이 내 허락 없이 학습 데이터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은 곧 배우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확산될 수 있다. 이는 AI 시대의 새로운 권리 전쟁을 예고한다.
‘가짜의 매끈함’에 돈을 지불할까
지금까지 가상 인플루언서는 광고·뮤직비디오에서 성공을 거뒀지만, 영화의 주연 자리를 차지할 때 관객이 같은 감동을 느낄지는 미지수다. 영화는 배우의 삶의 흔적과 우발적 감정이 만들어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우피 골드버그가 “5000명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존재와 싸워야 한다”고 말한 것도, 관객이 원하는 것은 결국 ‘인간성’이라는 메시지를 드러낸다.
제작사의 반박, “예술 작품일 뿐”
제작사 파티클6의 엘린 반 더 벨던은 “노우드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닌 예술적 창작물”이라며 “AI는 사람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구”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단순한 예술 실험을 넘어, 영화 산업의 근간인 노동·저작권·관객 경험을 건 문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 영화계에 던지는 경고
AI 배우 틸리 노우드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기술은 언제나 예술을 확장시켜 왔지만, 동시에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AI를 어떻게 ‘도구’로 남길 것인가, 혹은 ‘대체물’로 방치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지금, 한국 역시 같은 고민을 피할 수 없다. 초상·목소리·연기의 합성 사용을 계약서에 명확히 규정하고, 합성 여부를 고지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AI 금지’가 아니라 ‘동의-보상-책임’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산업의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
테크풍운아 칼럼니스트 scienceaza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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