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6일 저녁, 대전 유성구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국정자원) 5층 전산실에서 작은 불꽃이 튀었다.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 작업 중이던 UPS(무정전 전원장치)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대한민국 행정 시스템의 심장을 태웠다. 그리고 이 화재는 단순한 설비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디지털 기반시설’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 됐다.

국정자원 화재 현장, 소화수조에 담긴 리튬이온 배터리.  사진=연합뉴스
국정자원 화재 현장, 소화수조에 담긴 리튬이온 배터리.  사진=연합뉴스

“그날, 대한민국의 전산이 멈췄다”

발화 시간은 9월 26일 오후 8시 15분. 초기에는 이산화탄소로 진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전원 차단 후 방수작업으로 전환됐다. 그 사이 정부24, 국민신문고, 우체국 금융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시스템이 연쇄적으로 중단됐다. 행정안전부는 밤 10시 ‘경계’를 발령했고, 다음날 새벽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27일 오전 방송 3사 뉴스특보가 긴급 편성되자 국민들은 처음으로 “정부 전산망이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날 저녁 6시, 화재 발생 22시간 만에 완전 진화가 선언됐지만, 피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었다.

‘디지털 블랙아웃’이 남긴 상흔

국정자원 전산실 7-1구역(520㎡)이 거의 전소했고, 배터리 384대·전산장비 740대가 불탔다. 중대본은 “복구까지 최소 2주 이상 걸린다”는 전망을 내놨다.

복구는 곧바로 시작됐다. 9월 28일 30개 서비스 복구를 시작으로 29일 81개, 30일 95개, 10월 1일 105개, 2일 115개, 3일 116개… 그리고 10월 4일 낮 12시, 전체 647개 중 130개가 복구됐다(복구율 20.1%). 하지만 여전히 국민신문고, 안전디딤돌 등 핵심 96개 시스템은 ‘장기 장애’가 예상된다.

국정자원 화재로 국가전산망 먹통.  사진=연합뉴스
국정자원 화재로 국가전산망 먹통.  사진=연합뉴스

누가, 왜? 수사와 충전율 논란

국회 현안질의에서 국정자원 측은 “배터리 분리 시 충전율이 80%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는 국내 대표 배터리 제조기업이 권고하는 30% 이하 기준을 크게 넘어선 수치다. 경찰은 10월 2일 국정자원과 대전 지역 관련 업체 3곳 등 4개소를 압수수색해 사업계획서·배터리 로그 등 9박스 분량 자료를 확보했다.

국정자원 배터리 살피는 감식반.  사진=연합뉴스
국정자원 배터리 살피는 감식반.  사진=연합뉴스

현재는 주 전원 차단 이후 부속 전원 차단 여부, 배터리 잔류전류가 발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중점 분석하고 있다. 최초 발화로 추정되는 배터리팩 6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에 들어갔다.

복구는 더디고, 희생은 있었다

이 사태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었다. 10월 3일 오전, 국정자원 화재 대응 업무를 맡아온 행정안전부 디지털정부혁신실 소속 4급 서기관이 세종청사에서 투신해 숨졌다.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부 발표 뒤, 막대한 중압감과 책임이 한 개인에게 전가된 비극이 있었다.

누가 견뎌냈고, 누가 멈췄나

이번 사고는 중앙부처 간의 ‘디지털 인프라 격차’도 드러냈다. 행안부·기재부·복지부 등 10개 부처 홈페이지는 아직도 접속이 제한되지만, 서버를 광주 분원이나 외부 클라우드에 둔 국방부·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서울시 등은 정상 운영 중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서버 위치가 아니라, 분산·이중화 설계 여부와 직결된다. 지자체의 경우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위탁, 자체 데이터센터, 외부 클라우드 등 ‘멀티 백업 체계’가 이번에 위력을 발휘했다.

대한민국 디지털 안보, 새로 짜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리튬이온 UPS 취급 표준 강화와 DR(재해복구) 이중화 구축이 시급하다”는 경고라고 지적한다. 대규모 장애 전환 모의훈련, 지자체·외부 클라우드 구조의 통합 거버넌스, 대국민 서비스 현황판 공개 등이 핵심 과제로 거론된다.

정부는 이미 모든 중앙부처·지자체 행정시스템에 대한 전면 안전 점검을 예고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이중화 시스템 구축을 논의 중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끊긴 디지털 대동맥, 어떻게 다시 잇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국민에게 직접 보이지 않는 국가 기반시설이다. 그곳의 불길이 국민의 삶을 직접 멈춰 세웠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복구.  사진=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캡처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복구.  사진=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캡처

8일째 복구율 20%라는 수치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떤 ‘디지털 안전망’을 갖출 것인가를 묻는 경고음이다. 이제 과제는 시스템을 재가동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디지털 대동맥을 어떻게 더 안전하고 견고하게 다시 잇느냐”가 관건이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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