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의 바다를 건너 ‘결정의 제국’이 된 AI 기업, 팔란티어의 진화”
2003년 설립된 팔란티어(Palantir)는 한때 CIA의 비밀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정보 분석 기업이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이 회사는 인공지능(AI)을 ‘대답하는 기술’에서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며, 산업과 전장을 아우르는 새로운 AI 인프라의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 CIA가 키운 실리콘밸리의 이단아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는 200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페이팔(PayPal) 공동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 과 철학자 출신의 알렉스 카프(Alex Karp) 가 공동 창업했다.
초기 투자자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전략 벤처펀드 인큐텔(In-Q-Tel) 로, 이 독특한 출발점 덕분에 팔란티어는 다른 스타트업과 달리 ‘소셜 네트워크’가 아닌 정보기관의 데이터 해석과 테러 패턴 탐지라는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했다.
회사의 이름 ‘팔란티어(Palantir)’는 톨킨(J. R. R. Tolkien)의 소설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 등장하는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수정구슬(팔란티르)’에서 따왔다. 즉, 흩어진 데이터를 하나로 엮어 현실을 꿰뚫는 기술을 상징한다.
팔란티어의 첫 제품 ‘고담(Gotham)’ 은 다양한 출처의 데이터를 통합·시각화해 행동 가능한 통찰(actionable insight) 을 도출하는 시스템이었다.
9·11 테러 이후 테러방지·군사정보·범죄수사 등에서 폭넓게 활용되며 팔란티어를 ‘정보기관의 작전실’로 불리게 만들었다.
■ 데이터 분석에서 ‘결정 플랫폼’으로
정부기관 중심 솔루션으로 출발한 팔란티어는 2016년부터 민간 산업 영역으로 발을 넓혔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파운드리(Foundry)’ 플랫폼이다.
파운드리는 기업의 공장·물류·재무 데이터를 통합해 의사결정 자동화(Decision Automation) 를 지원한다.
예컨대 자동차 제조사는 파운드리를 통해 부품 공급망 데이터를 분석하고, AI가 “어느 공장을 먼저 가동해야 하는가”를 실시간으로 권장한다.
이후 등장한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 인공지능 플랫폼) 은 팔란티어 기술 진화의 정점이다.
AIP는 단순히 모델을 호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데이터 통합 ▲시뮬레이션 ▲권고 ▲실행까지 연결하는 AI 의사결정 사슬(Decision Chain) 을 완성한다.
즉, AI가 정보를 ‘설명’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제안하고 실행하는 구조로 진화했다.
알렉스 카프 CEO는 이를 “Operational AI(운영형 AI)” 라고 부른다. 이는 AI를 연구용이나 대화형이 아니라, 현장 업무에 즉시 연결되는 운영 인프라로 정의한 개념이다.
■ 전쟁과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는 AI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팔란티어의 AIP Defense 시스템을 도입했다.
위성·드론·통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통합하고 AI가 공격 우선순위·보급 경로·지뢰 제거 순서를 제시했다. 이는 ‘무기를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무장시키는 기업’ 으로서 팔란티어의 정체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AI가 전략을 계산하고 사람이 승인하는 구조, 즉 의사결정의 속도가 무기의 효율을 결정하는 전쟁이 현실화된 것이다.
동시에 팔란티어는 민간 시장에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머크(Merck) : 신약개발 데이터 분석 및 임상 시뮬레이션
▲에어버스(Airbus) : 전 세계 20여 공장을 연결해 항공 부품 5백만 개 이상 을 AI로 관리하는 ‘스카이와이즈(Skywise)’ 플랫폼 운영
▲HD현대(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 계열) : ‘미래형 조선소(FOS)’ 프로젝트에 Foundry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실시간 가상복제 모델)을 적용
▲에너지 채굴 및 ESG 리스크 분석 자동화
이처럼 AIP는 제조·에너지·의료 등 다양한 산업에서 AI가 시뮬레이션→권고→실행까지 수행하는 ‘결정 플랫폼’ 으로 자리 잡았다.
■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기밀망 AI’ 동맹
팔란티어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와 협력해 미 정부의 기밀 클라우드 환경 애저 거버먼트(Azure Government) 에 AIP×Azure OpenAI 를 통합했다.
이는 미 국방부 ‘Secret’ 및 ‘Top Secret’ 등급의 분류망에서도 AI 모델을 활용할 수 있는 첫 사례로, ‘모델→의사결정→실행’이 보안망 내에서 완결되는 국가급 AI 운영체계를 의미한다.
이 협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AI OS 생태계와 맞물리며, AI 인프라 삼각축(엔비디아 GPU – 마이크로소프트 OS – 팔란티어 결정 플랫폼)을 형성한다.
■ 국방 프로그램 ‘메이븐(Maven)’ 계약
팔란티어는 2024년 미 국방부의 AI 통합 사업 ‘프로젝트 메이븐(Project Maven)’ 시범 계약(약 4억8천만 달러 규모)에 참여하며 ‘전장 의사결정 자동화’ 를 현실화했다.
AIP는 군사 영상 및 정보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해 명령 사슬(Command Chain)을 최적화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운용 중이다.
■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 철학이 전략이 되다
창립자 피터 틸은 “기술은 국가의 생존 문제”라 주장하며 실리콘밸리의 리버럴 기풍과 선을 그었다. 알렉스 카프 CEO 역시 철학 박사 출신으로 “AI의 윤리는 민주주의를 방어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이 철학은 팔란티어를 경제적 기업이 아닌, 정치·안보 전략과 결합된 기술기업으로 만들었다.
즉, 엔비디아(NVIDIA)가 GPU로 AI의 ‘심장’을 만들고,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운영체제(OS)로 ‘두뇌’를 설계했다면, 팔란티어는 AI의 ‘손과 발’ — 즉 실행 능력(Operational Capability) 을 담당하는 기업이다.
■ AI 의사결정 망(Network)의 핵심 플레이어
2025년 현재, 팔란티어는 미국·유럽·아시아 각국 정부와의 방위 계약을 확대하며 AI 기반 방위 파트너십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이는 단순한 매출 확장이 아니라, AI가 글로벌 정치·경제 질서의 새로운 인프라로 편입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AI가 국가의 의사결정 망(Network)으로 기능한다는 것, 그 자체가 팔란티어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 “AI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행동한다”
팔란티어는 데이터를 읽는 눈에서 출발해 결정을 내리는 손으로 진화했다.
그들의 AI는 이제 보고·예측·분석을 넘어, “행동하는 지능(Operational Intelligence)” 으로 확장됐다.
AI 패권은 더 이상 모델 성능이 아니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결정을 실행할 수 있는가 로 재편되고 있다.
그 최전선에 팔란티어가 서 있다.
테크풍운아 칼럼니스트 scienceaza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