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버리가 GPU 감가상각과 5조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를 겨냥해 ‘AI판 분식회계’를 연일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공포와 기대 사이에서 숫자와 구조를 통해 이번 AI 사이클의 진짜 위험 지점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빅 쇼트’가 다시 돌아왔다...버리가 본 AI판 분식회계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붕괴를 예견하고 거대한 숏 베팅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있다. 영화 ‘빅 쇼트’의 실제 주인공, 마이클 버리다.
그 버리가 이번에는 다시 ‘빅 쇼트 2라운드’를 준비 중이라고 선언하며, 표적을 서브프라임이 아닌 AI 하이퍼스케일러와 GPU 감가상각으로 돌렸다. 버리는 메타,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같은 빅테크가 데이터센터용 GPU와 서버의 내용연수(감가상각 기간)를 일부러 늘려 잡아 감가상각 비용을 과소 계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계산은 꽤 구체적이다. 2~3년짜리 제품 주기를 가진 엔비디아 GPU를 5~6년짜리 자산처럼 회계 처리한 결과, 2026~2028년 사이 감가상각이 약 1,760억달러(약 240조원)나 적게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2028년 기준 오라클의 이익은 26%, 메타의 이익은 약 20%까지 과대평가될 수 있다는 경고가 뒤따른다.
과거 서브프라임 당시 버리는 “신용평가모델과 파생상품 구조 자체가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봤다. 이번에는 “AI GPU 감가상각 스케줄이 이익을 왜곡한다”는 구조적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버리 입장에선, 또 한 번 “장부는 호황인데, 숫자를 뜯어보면 곪아 있는 시장”을 보고 있는 셈이다.
5조달러 AI 인프라, 어느 순간부터 ‘기술’이 아니라 ‘부채’가 된다
버리가 던진 불씨 위에 기름을 붓는 건 숫자로 본 AI 인프라 투자 규모다.
JP모건은 보고서에서 향후 5년 동안 하이퍼스케일러들이 계획한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모두 수행하려면 최소 5.3조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정한다. 이 정도 규모면, IT 역사상 유례없는 ‘초대형 인프라 사이클’이다.
문제는 이 돈을 어디서 가져오느냐다.
JP모건은 빅테크가 자체 현금흐름과 유상증자로 충당 가능한 금액을 약 2조달러로 추산하고, 나머지는 ▲투자등급 채권 ▲하이일드 채권·레버리지론 ▲데이터센터 수익 유동화 구조화 금융 ▲사모대출 등을 총동원해도 1조4,000억달러가 여전히 부족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등장하는 단어가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이다. JP모건은 이 부족분을 사모대출과 정부 지원이 메우게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AI 인프라 투자가 전통 금융권이 잘 들여다보지 못하는 레버리지 구조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같은 리포트에서 JP모건은, 이 5조달러 투자가 연 10%의 수익률만 내더라도 연 6,500억달러의 매출이 필요하다고 계산한다. 이는 “전 세계 아이폰 사용자가 1인당 35달러를 매년, 넷플릭스 가입자가 1인당 180달러를 매년 AI 서비스에 지불하는 수준”이라는 비유로 풀어 썼다.
이쯤 되면 질문은 하나다.
“AI가 정말로, 이 정도 매출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가?”
메타의 270억달러 SPV, 엔론이 떠오르는 순간
숫자보다 더 불안한 건 구조다.
대표 사례가 메타의 하이퍼리온(Hyperion)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다. 메타는 미국 루이지애나에 최대 2GW급(보도에 따라선 5GW까지 언급) AI·LLM 훈련용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짓기 위해 블루아울 캐피털과 270억달러의 금융 계약을 맺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두 가지다.
이 프로젝트는 SPV(특수목적법인) 구조로 설계됐고, 블루아울이 지분 80%를 보유, 메타는 20% 지분만 가진 채 운영권과 사용권은 사실상 메타가 쥐고 간다.
전체 295억달러 수준의 금융 중, 91% 이상이 부채이며, 이 부채 대부분은 메타의 본사 재무제표 밖에서 관리된다.
겉으로 보면 메타의 레버리지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는 데이터센터라는 실물 자산을 돌리는 메타가, 그 자산을 담보로 한 막대한 부채를 그림자처럼 끌고 가는 구조다.
보험사·연기금·사모펀드가 이런 프로젝트에 대거 자금을 대고 있다는 점도 묘하게 엔론 사태 전후의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버리는 바로 이런 지점을 겨냥한다.
“기술 스토리 뒤에 감춰진 레버리지의 실체를 보라. 장부상 이익이 실제 현금흐름과 얼마나 엇갈리고 있는지 보라.”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다른 진단...“아직은 버블이라 부르긴 이르다”
흥미로운 건, 같은 숫자를 보고도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리는 쪽이 있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는 AI 투자를 분석하면서, 현재 미국의 AI 관련 하드웨어 투자가 연간 약 2,500억달러 수준이며 이는 미국 전체 기업 투자(투자지출)의 약 9%, 미국 GDP의 약 1% 정도라고 추정한다.
과거 닷컴 버블이나 철도·전기 보급기 때는 투자 대비GDP 비중이 2~5% 수준까지 치솟았다는 역사적 데이터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골드만은 “지금의 AI 붐은 분명 큰 사이클이지만, 역사적 버블 피크와 비교하면 아직 초반”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또 하나, 생산성 지표도 눈여겨볼 만하다.
골드만은 AI 확산이 본격화될 경우 미국 노동생산성 성장률이 연 1.5%포인트 추가 상향될 수 있다고 본다.
최근에는 AI 관련 투자가 GDP 통계에서 ‘중간재’로 처리돼 실제 경제 기여도가 과소계상되고 있다며, 미국 GDP에 약 1,150억달러의 ‘AI 투자 누락 갭’이 존재한다는 분석도 내놨다.
즉, 장부상으로는 “투자 과열”처럼 보일 수 있지만, 통계의 구조상 AI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정확히 잡히지 않아 오히려 낮게 보일 여지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시각에선, 지금 시장을 단정적으로 “버블”이라고 부르기보다는 “AI라는 기술이 막 본격적인 투자 사이클에 진입한 초입”으로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는 평가다.
닷컴 버블과 지금...광케이블은 ‘다크 파이버’가 됐고, 데이터센터는?
과거를 한 번 돌아보자.
1990년대 후반 닷컴 붐 당시, 미국 통신사들은 인터넷 트래픽 폭증을 믿고 광케이블을 미국 전역에 깔았다. 문제는 수요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버블이 꺼진 뒤, 광케이블의 85~95%가 ‘다크 파이버(dark fiber)’로 방치됐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이번에는 광케이블 대신 AI 데이터센터와 GPU 클러스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JP모건은 “AI 인프라 투자에서 기대했던 수익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경우, 글로벌 시가총액 약 20조달러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오픈AI,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은 이미 연간 수백억달러씩 AI 데이터센터에 쏟아붓고 있고, 그중 많은 부분이 SPV·사모대출·오프밸런스 구조로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부채로 쌓이고 있다.
만약 AI 서비스의 수익화 속도가, 투자 속도에 비해 현저히 느리다면 어떻게 될까.
“다크 파이버”가 그랬듯, 전력·냉각·부지·GPU를 몇 년치 선불로 지른 데이터센터가 ‘반쯤 놀고 있는 설비’로 남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
버리가 보는 진짜 버블의 진앙지는, 바로 이 “AI 설비가 실제 사용량과 매출로 정당화되느냐”의 문제다. 감가상각 논란은 그중 가장 회계적으로 드러나기 쉬운 앞단에 불과하다.
그럼 지금은 버블인가, 아닌가...숫자로 본 ‘애매한 현재 위치’
경제지표를 차분히 정리하면, 지금 AI 시장의 위치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투자 대비GDP 비중: AI 관련 투자는 미국 GDP의 약 1% 수준으로 철도·전기·닷컴 버블의 피크(2~5%)와 비교하면 아직 절반 이하다.
▲밸류에이션(Valuation): 엔비디아 등 AI 대표주는 PER 50~60배대에 거래되며, 전통 기준으로는 ‘버블 영역’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매출·이익 성장률이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높아, “버블 프리미엄”인지 “성장주 프리미엄”인지 해석이 갈린다.
▲생산성과 실물 경제: 초기 연구·통계는 AI 도입 기업 중심으로 생산성 개선 조짐을 포착하고 있으나, 거시 지표에서 확정적으로 “AI 덕분”이라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단계다.
▲부채와 레버리지 구조: 메타 하이퍼리온 SPV, 사모대출, 보험사 자금 유입 등은 확실히 “숨은 레버리지의 증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글로벌 크레딧 시장 전체가 AI 때문에 흔들리는 수준은 아직 아니다.
이 네 가지를 동시에 보면, 현재는 “완성된 버블”이라기보다는, “버블의 씨앗을 품은 초대형 AI 인프라 실험의 중간 단계”에 가깝다는 결론이 나온다.
투자자에게 중요한 건 ‘버블 여부’가 아니라 ‘진앙지’
마지막으로, 투자자 관점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이거다.
“AI가 버블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버블이 터질 경우 진앙지는 어디고, 그때도 살아남는 플레이어는 누구냐”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세 가지 체크포인트가 보인다.
▲GPU·데이터센터 ‘철근 콘크리트’ 말고, 경제적 수명이 긴 쪽을 보라
단순히 GPU를 사서 렌털하는 비즈니스보다, 에이전트 AI·피지컬 AI(로봇, 자율주행, 제조·물류 자동화)처럼 실제 비용 절감과 매출 증대로 이어지는 영역이 중요해진다. 여기서 창출되는 현금흐름이 결국 5조달러 인프라를 방어해줄 유일한 방패다.
▲레버리지와 회계 정책을 같이 보라
GPU 감가상각 기간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기업, SPV·사모대출을 과도하게 활용해 오프밸런스 부채를 쌓는 기업은 AI 수요의 작은 흔들림에도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투자/GDP와 생산성 지표를 같이 보라
투자 비중만 치솟고 생산성은 정체 혹은 하락하게 되면 클래식한 버블 시그널이다. 반면 투자도 늘고, 생산성도 완만하게라도 개선되면 새로운 일반 목적 기술이 자리잡는 전형적인 전개가 되는 것이다.
버블을 두려워하기보다, 구조를 읽어야 할 때
마이클 버리는 지금도 X(옛 트위터)에 “그때도 맞았다. 이번에도 맞을 것이다.”라는 문구를 올리며 AI 버블 숏 베팅을 공개적으로 예고하고 있다.
그의 말이 다시 한 번 역사적 대박으로 돌아올지, 아니면 이번에는 “너무 일찍 겁먹은 곰(베어)”으로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이번 AI 사이클의 승패는 단순히 ‘챗봇이 얼마나 똑똑해졌냐’가 아니라, 5조달러에 달하는 인프라를 실제 현금흐름으로 뒷받침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AI 시대를 믿는 투자자라면, 지금 봐야 할 것은 공포 섞인 “버블”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감가상각 뒤에 숨어 있는 회계의 구조,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부채의 사슬, 그리고 AI에이전트, 피지컬 AI로 이어지는 “현실 세계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버블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
문제는 언제가 아니라, 그때 어느 쪽에 서 있을지를 지금부터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테크풍운아 칼럼니스트 scienceaza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