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맥기 지음 / 이준걸 옮김
애플은 여전히 중국에서 잘 팔린다
아이폰17은 2022년 이후 역대 최대 아이폰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미중의 패권경쟁 하에서도 애플은 여전히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폰 생태계가 그만큼 락인효과가 강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생각이 조금은 바뀐다.
“포획(Capture).”
혁신의 아이콘, ‘디자인된 미래’를 상징하던 애플을 두고 “포획”이라니. 하지만 [애플 인 차이나] (Apple in China)는 이 불편한 단어 하나로 책 전체를 견인한다. 단순한 공급망 스토리가 아니다. 패트릭 맥기의 결론은 명료하다. 애플이 중국을 키웠고, 그 대가로 중국에 잡혔다.
애플의 혁신은 아이폰이 아니라 “생산 체계”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이렇다. 잡스가 아이폰으로 세계를 바꿨고, 팀 쿡은 수익률로 애플을 완성했다. 하지만 맥기는 ‘팀 쿡의 진짜 혁신’을 전혀 다른 지점에서 찾는다.
“애플은 생산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생산을 지휘한다.” 기계설비는 애플이 사고, 공장은 협력사가 짓고, 노동자는 중국이 공급한다.
이 기묘한 삼각 구조 속에서 애플은 제조업 역사상 유례없는 통합 능력을 발휘했고, 그 결과 중국은 ‘세계 최대의 전자 제조 기술’을 얻게 된다. 애플이 2015년에만 중국에 쏟아부은 자금은 550억 달러-맥기가 비교한 바로는 연간 1개국에 투입된 ‘현대판 마셜플랜’이다.
결과는 단순하다.
애플은 최고의 제품을 만들었고, 중국은 최고의 제조국이 되었다. 문제는 너무 잘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책의 중반부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은 팀 쿡이 중국을 직접 찾아가 ‘중국에의 공헌’을 설득하는 대목이다. 왜냐?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외국 기업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애플은 처음으로 선택을 강요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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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요청한 ‘테러리스트 아이폰 잠금 해제’는 끝내 거부했던 애플이 중국 정부의 요청에는 순순히 따른다. 이유는 단순하다. 중국은 애플의 생명줄이다.
전체 제품의 90%가 중국에서 조립되고, 중국 업체가 만든 부품 비중은 계속 늘어난다. 중국 정부가 전력 공급을 일부만 조정해도 애플의 신제품 출시는 마비된다.
애플이 키운 것은 중국 스마트폰 기업뿐이 아니었다
책이 가장 불편하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노키아·모토로라를 무너뜨렸는가? iPhone이 아니라 중국 제조 생태계다. 애플이 중국 협력사를 훈련시키고 기술을 가르친 덕분에 화웨이·샤오미·오포·비보는 ‘애플급 제조 역량’을 갖추게 된다. 이 역량은 휴대폰에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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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테슬라조차 중국에서 애플의 ‘중국형 운영방식’을 적극적으로 모방한다. 중국 EV의 급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포획의 역설은 더 커질수록 더 못 벗어난다는 점이다.
애플은 이제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정치·안보·경제 모두가 얽힌 미묘한 외줄타기를 한다. 중국에 협조하면 서구에서 공격받고 미국에 협조하면 중국의 압박이 즉시 시작된다. 베트남,인도 등으로의 탈중국 선언은 현실성 떨어지는 먼 나라이야기다.
맥기의 결론은 냉정하다.
“애플은 탈출이 아니라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 애플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삼성과 LG 같은 한국 기업에게도 질문은 직설적이다. 애플이 키운 중국 기술력이 결국 한국 제조업의 위협이 되었고 TSMC에 대한 극단적 의존은 지경학적 ‘단일 실패점(single point of failure)’이며 미국의 탈중국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중국은 자체 운영체제(HarmonyOS)로 ‘중국형 생태계’를 구축한다.
애플의 위기는 단일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기술 공급망 전체의 균열을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누가 읽어야 하는가
1. 글로벌 공급망 전략을 담당하는 기업 리더들
2. 삼성·LG 등 중국과 경쟁·협업을 동시에 해야 하는 산업 종사자
3. 정책결정자·투자자
4. 기술패권의 구조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
단순히 애플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기술지형이 왜 이렇게 뒤틀렸는가’를 보여주는 구성이다.
한 문장 요약
《애플 인 차이나》는 세계 최강 기업이 어떻게 스스로 중국의 기술 굴기를 가속시키고, 그 대가로 중국에 포획되는지 그 숨겨진 25년의 기록을 드러낸다—애플의 성공 신화의 이면이 처음으로 밝혀진다.
별점: ★★★★☆
(탐사보도의 집요함, 국제정치경제 분석, 기업사 읽기의 묘미가 모두 담긴 책.)
금몽전 기자 kmj@kmjourn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