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10년

'실패를 통과하는 일' 책표지
'실패를 통과하는 일' 책표지

정치는 종종 드라마보다 더 극단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창업의 세계 또한 마찬가지다. 드라마 속 이상적 대통령 ‘바틀렛’ 같은 지도자가 현실에는 드물 듯, 스타트업 세계에서도 교과서 같은 성공담은 보기 어렵다. 오히려 수많은 실패와 좌절, 때로는 좌초의 순간들이 연속된다. 박소령 전 퍼블리 대표가 펴낸 《실패를 통과하는 일》은 바로 그 실패의 터널을 정직하게 기록한 책이다.

퍼블리는 2030 직장인들에게는 꽤 알려진 콘텐츠 스타트업이다.

지식 콘텐츠를 유료로 제공하며, 한국형 링크드인을 꿈꾸던 서비스였다. 그러나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는 신용카드 돌려막기, 투자 유치 실패, 방향성을 놓친 결정들이 쌓여 있었다. 박소령 대표는 이 10년을 “실패의 연속”으로 명명한다. 하지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실패를 단순히 후회로 남기지 않고 ‘통과하는 과정’으로 기록했다는 데 있다.

책은 거꾸로 시작한다.

사직서를 쓰던 날, 회사의 끝에서 출발해 다시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자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두려는 전략이자, 실패를 정면에서 마주하겠다는 저자의 결심이다. 그리고 각 장마다 저자는 자신이 내렸던 결정, 그때의 감정, 시간이 흐른 뒤의 성찰을 교차시킨다. 실패라는 단어가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낙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산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책 전반에 흐르는 핵심 키워드는 ‘주도권’과 ‘책임감’이다.

저자는 “정신 차려 보니 주도권이 내 손에 없을 때가 가장 불행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끝내 회사를 정리하면서도 “내가 시작했으니 끝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이는 비정하면서도 단단한 태도였다. 실패를 남 탓하지 않고, 스스로 칼자루를 쥔 채 마무리하겠다는 다짐. 바로 그 지점에서 창업가로서의 내면적 성숙이 드러난다.

책 속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실패를 견디는 과정에서 저자가 찾은 작은 도구들이다.

퇴근 후 3km 달리기, 조언자(confidant)와의 대화, 그리고 글쓰기. 달리기는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결과를 제공했고, 조언자는 이해관계 없는 자리에서 가장 솔직한 대화를 가능하게 했다. 글쓰기는 흩어진 감정과 반성을 모아내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장치였다. 결국 이 책 자체가 그 치유의 결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록이 한국적 맥락에서 나온 드문 사례라는 것이다.

저자는 영미권 경영서와 회고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것을 한국적 현실에 맞추지 못해 실수도 했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이 책은 더 의미 있다. 단순한 성공 신화의 번역이 아닌, 한국 스타트업 현장에서 실제로 겪은 실패의 경험이자 반면교사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실패란 어느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긴 터널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는 대개 실패를 회피하거나 빨리 잊으려 하지만, 저자는 실패를 끝까지 직시하고 기록하며 통과한다. 그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사회적 빚을 갚는 길이라고 믿는다. “실패는 공유할 만한 자산”이라는 저자의 고백은,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힘겹게 버티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실패를 통과하는 일》은 위로의 책이자 실무적 인사이트를 주는 책이다.

스타트업 창업자뿐 아니라 직장인, 리더, 혹은 자기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책임감 때문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는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 다만 주도권을 다시 쥐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실패의 문턱에 선 이들에게는 “실패를 피하는 게 아니라 통과하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건넨다.

정치든 창업이든, 삶의 무대는 언제나 경기장 안이다.

그 안에서만 눈물과 상처, 그리고 성장이 가능하다. 박소령의 기록은 바로 그 경기장에서 버텨낸 사람의 고백이다. 실패를 기록함으로써 그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주도권을 되찾았다.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단 하나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가.

감문전 칼럼니스트  art@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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