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인터넷·AI, 기술 혁명에 응답한 인간의 전략

이미지 = 제3의 응전 표지
이미지 = 제3의 응전 표지

AI 시대, 개인의 응전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등장한 지 채 3년도 안 되어 우리는 이제 글쓰기, 그림, 영상, 심지어 음악까지 AI와 함께 만드는 시대에 들어섰다. 이 속도라면 앞으로 5년 후, 우리의 일상과 일터가 지금과 얼마나 달라질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희망과 두려움이 동시에 교차하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개인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단순히 기술을 배우고 적응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연세대 모종린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이에 대한 중요한 답을 던진다.

그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도전과 응전”으로 설명한다.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인간에게 거대한 도전이었다.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 원자력, 그리고 지금의 인공지능까지. 그리고 그 도전에 맞서 인간은 단순히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차원을 넘어, 창의적으로 대응해왔다. 모 교수는 이것을 “응전(應戰)”이라 부른다.

응전은 반사적 대응이 아니다.

기술을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기술에 맞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대응이다. 역사적으로 세 번의 큰 응전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네 번째 문턱에 서 있다.

첫 번째 응전은 산업혁명 시대였다. 기계화에 맞서 노동자들은 러다이트 운동으로 기계를 부수었고, 지식인들은 낭만주의로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응전은 미술공예운동이었다. 기계가 만들어낸 조잡한 제품 대신, 장인정신과 디자인을 살려 더 아름답고 인간적인 물건을 만들자는 시도였다. 이 운동은 현대 디자인·건축·스튜디오 시스템의 뿌리가 되었고, 단순한 저항을 넘어 새로운 산업과 미학의 길을 열었다.

두 번째 응전은 1960년대 군산복합체와 대중사회의 시대였다. IBM의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정부와 대기업의 권력을 뒷받침하던 시절, 미국 청년들과 반문화 운동은 ‘기술 관료 체제’에 저항했다. 그들의 요구는 자율성과 자유였다. 이 흐름 속에서 태어난 것이 개인용 컴퓨터(PC)였다. 애플과 IBM PC로 이어진 혁신은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거대 시스템에 맞선 개인 기술의 승리였다.

지금 우리는 세 번째 응전의 시대, 즉 AI 플랫폼 시대에 살고 있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클라우드와 데이터, GPU 자원을 독점하며 인공지능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서비스에 접속해 AI를 빌려 쓰는 ‘터미널 사용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역사가 보여주듯, 집단 기술이 독점적 힘을 가지면 반드시 그에 대한 개인 기술의 응전이 등장한다.

실제로 이미 조짐이 보인다. 첫째, 오픈소스 AI다. 스테이블 디퓨전 같은 오픈소스 모델은 개인이 직접 내려받아 자신의 컴퓨터에서 실행할 수 있다. 이는 플랫폼 종속에서 벗어난 개인 소유 AI의 첫 사례다. 둘째, 메이커·해커 운동이다. 이들은 거대 기업의 기술을 흉내 내거나 변형하면서 독립적 생태계를 만든다. 셋째, 공유경제와 웹3 운동은 데이터와 자산을 탈중앙화해 플랫폼에 맞서려는 시도다. 넷째, 크리에이터 경제다. 유튜버, 인플루언서, 1인 창작자들은 플랫폼 위에 있지만, 동시에 플랫폼에 기대지 않고도 생계를 유지하는 새로운 개인 주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네 가지 흐름은 모두 개인을 해방시키고 개인 기술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모 교수는 이것을 “제3의 응전”이라 부른다. 플랫폼 중심의 집단 기술에 맞서는 개인 기술의 등장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우리는 기술을 수용하는 데는 세계 최고지만, 응전의 전통은 약하다. 서구에는 반기술·탈기술 전통이 있어 기술의 인간적 의미를 끊임없이 성찰해 왔다. 하지만 한국은 기술 발전을 곧 ‘성공’으로 등치시키며 비판이나 저항을 사치로 여겼다. 그래서 늘 추격자는 될 수 있어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주도자는 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인 차원의 자신감이다. 단순히 AI를 배우는 수준을 넘어서, AI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인간화하는 기술로 만들어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혁신을 이끈 주체는 반드시 개인이었다. 윌리엄 모리스 같은 장인, 1960년대 해커문화 속 젊은이들, 그리고 스티브 잡스 같은 기업가가 그렇다. 그들은 과학자가 아니었지만, 기술을 인간적인 방향으로 재해석하며 산업 전체를 바꿔 놓았다.

앞으로 AI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거대 플랫폼이 장악했지만, 곧 온디바이스 AI, 개인 소유 AI, 데이터 주권 기반 AI가 등장할 것이다. 이미 나의 글이나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시켜 나만의 AI를 만드는 기술은 가능하다. 아직은 비용과 장비의 문제지만, 기술의 방향은 명확하다. AI는 점점 더 개인화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한국은 자영업 비중이 높은 나라다. 소상공인, 1인 기업, 프리랜서는 사실상 크리에이터와 다르지 않다. 이들을 단순히 지원 대상이 아닌, 개인 기술을 활용하는 창의적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 정책도 기업 경쟁력이 아니라 개인 경쟁력, 개인 창의성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더 좋은 기술이란 무엇인가? 인간적인 기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AI 시대, 우리는 다시 한 번 거대한 기술의 도전에 직면했다.

하지만 역사는 말한다. 산업혁명기의 미술공예운동이 그랬고, 1960년대의 개인용 컴퓨터 혁명이 그랬듯, 거대 기술은 언제나 개인 기술의 응전을 불러왔다. 이번에도 예외일 수 없다.

AI 시대의 승자는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응전하는 개인일 것이다. 기술을 두려워하지 말고, 거부하지도 말고, 기술에 대응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개인의 응전이고, 우리의 미래를 여는 열쇠다.

감문전 칼럼니스트  art@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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