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은 어떻게 미래 소비를 지배하는가

감각의 설계자들 책표지
감각의 설계자들 책표지

유럽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전통과 관광의 대륙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던 유럽은 지금, 오히려 감각을 무기로 삼아 미래 소비 시장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선점하고 있다. 《감각의 설계자들》은 저자 김양아가 유럽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기록한 “미래 시장의 설계도”다. 감각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 이 책은 그 게임의 룰을 최전선에서 먼저 읽어낸 마케터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첫 메시지는 ‘유럽은 결코 고인물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한국 기업들이 보기에 유럽은 언어와 문화, 역사와 예술이 중첩된 복잡하고 이질적인 시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유럽을 거대한 연구실로 만든다. 호텔부터 레스토랑, 갤러리, 리테일 매장, 소규모 멤버십 클럽까지 모든 공간이 감각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와의 관계를 구축한다.

감각이 비즈니스가 되는 순간

책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유럽의 브랜드들이 감각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비즈니스로 전환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예를 들어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 빕(Binip) 은 단순히 휴지통이나 커트러리를 전시하는 대신, 호텔이라는 무대를 통해 소비자가 그들의 철학 속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하도록 설계했다. 주방 서랍을 열면 빕의 커트러리가 놓여 있고, 욕실의 수건과 조명, 가구가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 있다. 브랜드는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체득되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더 소셜 허브(The Social Hub) 역시 흥미롭다.

원래 ‘더 스튜던트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학생 기숙사와 호텔 사이의 중간 지대를 실험했던 이 브랜드는, 시간이 지나며 디지털 노마드와 창업자, 프리랜서 등 새로운 체류자 군을 끌어들이며 리브랜딩을 단행했다. 학생에 국한되지 않는, 호텔·레지던스·셰어하우스의 속성을 아우르는 체류 자산 플랫폼으로 진화한 것이다.

소호하우스(Soho House) 는 뉴 럭셔리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곳의 강점은 단순히 좋은 공간이 아니라, 감각과 정서가 결합된 ‘완벽한 비일상’이다. 조명, 가죽 소파, 예술 작품이 어우러진 감각적 경험은 호텔이나 클럽에 머무는 순간을 넘어 ‘소호 홈(Soho Home)’이라는 제품군으로 확장된다. 공간의 정서를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재구성해, 사람들은 소호하우스에서 느낀 감각을 집으로 가져간다.

웰니스 영역에서도 감각은 핵심 자본이 된다.

서드 스페이스(Third Space) 는 단순한 피트니스 클럽이 아니라 ‘퍼포먼스 웰니스’라는 개념을 통해 운동 전후의 감정, 휴식, 교류까지 정밀하게 설계했다. 러닝머신에서 스파, 명상실, 라운지로 이어지는 경험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을 일상의 중심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감각의 제국, LVMH

책은 LVMH를 ‘감각의 제국’이라 부른다. 이 그룹은 단순히 패션과 주얼리를 파는 기업이 아니다. 파리의 사마리텐 백화점을 도시의 상징으로 재탄생시키고, 슈발 블랑 호텔을 통해 고객의 삶을 브랜드화한다. 더 나아가 와인, 예술, 웰니스를 아우르는 생태계를 만들어냄으로써 럭셔리를 삶의 방식 전체로 확장한다. 흥미로운 사례는 미식 브랜드 랑고스테리아다. 음식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매개체를 통해 고객의 생활 속에서 브랜드 경험을 지속 가능하게 확장하는 이 모델은, LVMH가 미래 소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잘 보여준다.

유럽이 설계하는 미래 소비의 본질

《감각의 설계자들》이 전하는 인사이트는 분명하다. 제품의 시대는 저물고, 감각의 시대가 도래했다. 유럽의 브랜드들은 오랜 헤리티지와 문화를 현대적 욕망과 결합해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적 경험을 만든다. 이 감각 경험은 소비자의 기억을 형성하고, 재방문과 재구매, 나아가 입소문으로 이어진다.

책은 여섯 개의 무대, 호텔과 리테일, 미식, 예술, 도시재생, 뉴 럭셔리와 웰니스, 그리고 LVMH를 통해 감각이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파리의 사마리텐, 런던의 배터시 프로젝트, 프라다의 문화 재단, 소호하우스 같은 뉴 럭셔리 클럽까지, 모든 사례는 감각이 곧 미래 소비의 자산임을 증명한다.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감각을 통해 특정 공간이나 브랜드를 기억한다. 그 기억이 충성도를 만들고, 소비로 이어진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기반으로 지금의 소비 방식을 한 단계 더 정교하게 진화시키는 것.”

결국 미래 소비의 본질은 ‘감각 설계’다. 호텔이 감정을 설계하는 무대가 되고, 레스토랑이 정체성을 드러내는 경험이 되며, 도시가 브랜드가 되는 시대. 《감각의 설계자들》은 유럽 현장에서 발견한 이 흐름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안내서다.

감문전 칼럼니스트  art@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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