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공간은 오래 기억되는가
요즘엔 클릭 한 번이면 온라인에서 못 살 게 없다
밥도, 옷도, 가구도, 심지어 자동차까지. 굳이 발품 팔며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갈 필요성이 예전만큼 절실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고, 사진을 찍어 공유하며, 오래도록 기억하는 ‘공간’이 있다.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건국대 경영대 이승윤 교수가 쓴 《공간은 전략이다》는 바로 그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을 ‘디지털 문화심리학자’라 소개한다. 마케팅을 연구하면서도 단순히 제품을 파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 심리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서 해법을 찾기 때문이다. 디지털 플랫폼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왜 오프라인 공간이 여전히 사람을 끌어당기는지 이 책은 설득력 있게 짚어낸다.
온라인의 편리함을 넘어서는 오프라인의 힘
과거엔 상권 안의 식당끼리 경쟁했다면, 이제는 반경 5km 내에서 배달 앱으로 주문 가능한 모든 가게가 경쟁자다. 그럼에도 성수동 같은 곳은 여전히 ‘성지’가 된다. 팝업스토어들이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구매를 넘어 ‘놀러 갈 이유’를 만들어주는 전략이 작동하는 것이다.
‘예쁜 공간’의 유효기간
제주도의 수많은 카페들이 한때 연예인들의 발길을 끌었지만 금세 사라진 이유도 여기 있다. 인테리어의 화려함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한다. 더 예쁘고 세련된 신상 공간이 끊임없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래 살아남는 공간은 ‘단골’을 만들고 ‘팬슈머’를 길러낸다. 관계와 스토리가 없는 공간은 결국 잊히지만, 교류와 몰입을 제공하는 공간은 계속 찾아오게 된다.
컨셉이 사람을 잡는다
책이 강조하는 핵심은 ‘컨셉’이다. 스타벅스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커피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3의 공간(Third Place)’이라는 명확한 컨셉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First Place)과 직장(Second Place) 사이에서 머물 수 있는 공간. 이 컨셉 하나가 인테리어, 음악, 와이파이 정책 등 세부 전략을 통합해 사람들을 오랫동안 머물게 했다.
개인화와 공감의 시대
오늘날 소비자는 ‘나만의 경험’을 원한다. 모나미가 1,000원짜리 153 볼펜을 분해해 조립 체험을 제공하는 이유, 나이키가 매장에서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운영하는 이유도 같다. 전체 공간을 매번 바꿀 수는 없지만 부분적으로 개인화 경험을 제공할 수는 있다. 이런 세심한 전략이 고객에게 “이곳은 나를 이해한다”라는 감각을 준다.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의 전략
온라인으로는 전할 수 없는 가치, 바로 오감이다. 신세계백화점이 식품관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각, 후각, 미각을 자극하는 경험은 온라인이 따라올 수 없고, 이는 곧 발걸음을 이끄는 이유가 된다.
자영업자에게 주는 메시지
대기업의 전략처럼 거대한 투자를 할 수 없는 소상공인에게도 이 책은 유효하다. 중요한 건 ‘관계의 설계’다. 커피 맛만큼이나 왜 이 공간을 열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는지를 담아내야 한다. 인스타그램 한 계정이라도 꾸준히 운영하며 고객과 교류하는 것, 공간에 맞는 작은 이벤트를 만드는 것, 단골을 팬으로 만드는 것. 거기서 지속 가능한 힘이 나온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공간은 전략이다》는 단순한 마케팅 서적을 넘어, “왜 우리는 여전히 오프라인 공간을 찾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회·문화적 답을 제시한다. 공간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고, 오감을 열고, 관계를 맺는 전략의 장(場)이다. 온라인 시대에도 오프라인이 빛날 수 있는 이유, 그리고 그 공간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감문전 칼럼니스트 art@kmjourn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