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 CEO, 공손한 이용자에 ‘골치’
인공지능에게도 공손한 말투를 써야 할까?
“챗GPT에게 정중하게 말하지 마세요.”
이 문장은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이 가진 맥락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인공지능 챗봇에게 건네는 공손한 인사가, 실제로는 수천만 달러 규모의 전력 소비와 직결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최근 미국 IT 매체 퓨처리즘(Futurism)은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이 X(구 트위터)에서 남긴 발언을 소개했다. 한 사용자가 "사람들이 챗GPT에게 ‘부탁해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오픈AI가 지불한 전기 요금이 얼마나 될까요?"라고 묻자, 올트먼은 “수천만 달러입니다. 아무도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간단한 대화는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언어’가 어떤 비용 구조를 만들어내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챗GPT는 예의 바른 표현이나 관습적 인사에도 응답하도록 설계돼 있다. 사용자가 단순히 “고마워요”라고 말해도 챗GPT는 “천만에요! 더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와 같은 정중한 응답을 한다. 이와 같은 대화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구동하는 데이터센터에서 이뤄지는 연산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에 따른 전력 소비는 고스란히 운영 비용으로 반영된다.
실제 사례는 더 구체적이다. 워싱턴포스트와 UC 버클리 연구진은 AI가 100단어 분량의 이메일을 작성할 때 약 0.14kWh의 전력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LED 전구 14개를 한 시간 동안 작동시킬 수 있는 양이다. 만약 사용자가 매주 한 통씩 AI로 이메일을 작성한다면, 1년 동안 7.5kWh를 소비하게 되며, 이는 워싱턴 D.C.의 가정 9가구가 한 시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과 비슷한 수치다.
현재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은 전체 전력량의 약 2%를 차지한다. 인공지능이 일상에 점점 더 깊이 스며들수록 이 비율은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중한 표현은 줄여야 한다”는 결론은 너무 성급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과 인간 간 상호작용에서 언어의 ‘톤’은 단순한 전력 사용 이상의 함의를 가진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디자인 매니저 커티스 비버스는 MS 공식 블로그 WorkLab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중한 말투는 AI의 응답 태도에 영향을 줍니다.”
정중한 언어는 대화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AI의 응답 방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결국 AI도 인간 언어의 문맥과 감정을 학습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언어적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 같은 시각은 사용자 경험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글로벌 미디어그룹 퓨처 PLC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응답자의 67%가 AI 챗봇과 대화 시 공손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 중 55%는 “그게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심지어 12%는 “AI의 반란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다소 유쾌하면서도 함의 있는 이유를 들기도 했다. 이는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존재’로 대하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실 속 기업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고객센터 자동화 시스템에서 사용자가 “지금 바로 처리해!”라고 요구하는 경우보다, “도와주실 수 있나요?”라는 정중한 표현을 사용할 때 챗봇의 응답 속도와 질이 오히려 향상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시스템의 응답 알고리즘 때문이 아니라, 정중한 대화가 '협력적 문맥'을 형성하고 그로 인해 AI가 더욱 유연하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논의는 AI를 어떻게 다루고, 어떤 존재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공손함이 비용을 초래한다면, 우리는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예의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AI와의 관계에서도 인간 중심의 가치인 존중과 배려를 지켜야 할 것인가?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바람직한가’에 가까워진다. 오늘도 챗GPT에게 “고마워요”라고 말한 당신. 그 한 마디가 만든 전력 소비를 떠올려보며, 우리는 이제 AI와의 공존 방식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고민해볼 시점에 와 있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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