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이 정점에 이르자, 중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칩 자립령’을 공식화했다. 국가 자금이 투입된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서 외국산 칩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강력한 조치를 내리며, 화웨이·캄브리콘 등 자국 기업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화웨이 어센드 910C 칩.  사진=화웨이
화웨이 어센드 910C 칩.  사진=화웨이

“국산 칩만 사용하라” 중국 중앙정부 지침 내려

로이터통신은 5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정부가 국책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서 외국산 칩을 전면 배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번 명령은 공정률 30% 미만인 프로젝트의 경우 이미 설치된 외국산 칩을 제거하거나 구매 계약을 취소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공정률이 높아 이미 진행된 사업은 개별적으로 심사를 거쳐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엔비디아·AMD·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의 대형 AI 인프라 사업에서 사실상 배제될 전망이다.

1,000억 달러 투입된 ‘AI 국가 인프라’의 대전환

중국은 2021년부터 약 1천억 달러(약 140조 원) 규모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이 가운데 다수는 지방정부와 국유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국책 사업으로, 이번 조치는 실질적으로 중국 내 주요 AI 인프라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 정책 변화로 해석된다.

중국 당국은 이번 결정을 통해 자국 반도체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미국 수출 규제로 인한 반도체 공급 불안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화웨이·캄브리콘·메타엑스로 기회 이동

외국산 반도체가 퇴출되면서 화웨이(Huawei), 캄브리콘(Cambricon), 메타엑스(MetaX) 등 중국 내 AI칩 제조사들이 대체 공급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화웨이는 이미 자사 AI칩 ‘어센드(Ascend) 910C’를 중심으로 국가급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며, 캄브리콘은 서버용 칩과 학습용 AI 가속기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확장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지침이 단기적으로 자국 기업의 성장을 견인하겠지만, 동시에 성능과 생태계 측면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AP·EPA,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AP·EPA, 연합뉴스

미국 수출 규제와 맞불…‘칩 전쟁’ 2라운드 돌입

이번 결정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첨단 반도체 수출을 제한한 데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은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칩(H20, L20 등)에 대한 추가 수출 제한을 검토 중이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최고급 AI칩의 대중 수출은 금지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에 따라 양국 간 반도체 갈등은 ‘제조·장비’ 단계를 넘어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재편…AI칩 생태계 ‘양극화’ 가속

중국 시장은 AI 데이터센터용 칩 수요 측면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외국산 칩이 배제되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 시장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 거점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반면 중국은 이번 조치를 계기로 기술 내재화에 박차를 가하며 ‘AI칩 국산화율 10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단기적으로는 국내 산업에 활력을 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성능·효율·생태계 격차로 인한 기술 고립 리스크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자립의 길, 기회와 리스크가 공존한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단순한 기술 보호 정책이 아니라, 국가 전략 수준의 ‘칩 독립 선언’에 가깝다.

화웨이 등 자국 기업들은 대형 프로젝트를 발판으로 글로벌 반도체 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지만, 외부 기술과의 단절은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릴 수도 있다.

결국 이번 ‘AI칩 금지령’은 중국이 선택한 기술 자립의 실험대이자, 미·중 반도체 전쟁의 새 전선으로 평가된다.

테크인싸 칼럼니스트  tlswnq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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